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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에 대한 단상_정류소_오혜주 November 17, 2005

“쓸모”에 대한 단상

오혜주

이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해주었는데, 그 중에 가장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한 단어는 바로 “쓸모”였다.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년이 되지 않기 위해 그간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혐오하고 합리화하고 변명해 왔는지 생각해보면, 이 말은 매우 무서운 말이다.
그것이 근대화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간형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가열찬 노동으로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상적인 노동자가 아니어서 듣게 되는 꼰대들의 꾸지람이라면, 별로 무서울 것은 없다. 그런 가치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에서 오히려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던져준 “쓸모”라는 화두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현재 이 사회의 가치체계의 변화·재구축의 진행상황과 지점들을 파악하지 않으면 많은 오해와 왜곡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쓸 수 없는 무서운 말이었다.
신자유주의, 전지구화 시대의 “쓸모”란 무엇인가. “쓸모”있다, 없다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에게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쓸모”있는 인간, 특히 “쓸모”있는 예술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논의를 하다보면 나는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 그러나 그 혼란과 분열의 양상에서 마찬가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두 가지 태도를 접하게 된다. 하나는 어떤 윤리를 가졌더라도 문화산업에 포섭되면, 마케팅을 잘하고 돈을 벌면 “쓸모”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당위적이고 선한 의도라면 무조건 “쓸모”있고 이 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찬양하는 태도이다.
전자의 태도는 천재감독의 영화 한편 제작이 자동차 몇백만대의 수출보다 낫다는 식의 계산법과, 우스개 소리로 얘기해서 미술을 ‘애니메이션’과 ‘기초예술’로 나누는 식의 이분법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분법은 당연히 그것을 단순봉합시키는 짓에도 앞장선다.
후자의 태도는 아이들, 노인, 장애인, 저소득 계층, 이주노동자, 해외입양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당위적이고 계몽적인 차원에서의 선전선동, 캠페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태도의 특징은 전략이 없다는 것, 그래서 늘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들은 사회 변화의 액면과 이면의 상호관계성, 역학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야기되는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뭔가 특이하고 남다른 상상력과 창조성으로 마케팅에 목숨걸고 문화산업과 결합하거나, 당위성과 봉사정신으로 환경미화를 통해 열악한 사회 환경과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어떤 “쓸모있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유망한 큐레이터에게 발탁되거나 유수한 국제전에 초청되어 작품의 미적가치를 인정받고 아트씬에서나마 이름을 날리는 일?

그것에 대해 이젠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이다. 물론 게으르기 때문에 생각만 백년이 걸릴 수도 있고...

단적으로 말해 정은영의 <정류소>는 위에서 말한 어느 태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물론 위에서 언급한 태도들이 예술판의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정은영은 이 작업을 통해 “쓸모있다고 통용되어온” 여러 가지 개념과 요소들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해체한다. 해체의 목적은 다르게 생각하기, 그리고 개별주체들의 역사와 경험을 기반으로 재구축하기...로 나는 보인다.
나의 욕심이라면, 작업의 피드백을 좀 더 풍부히 받아볼 수 있는 어떤 장치들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피드백이 풍부하다면 작가가 다음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크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outsideart at November 17, 2005 09:3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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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gie Up Skirt  at Fergie Up Skirt  (September 28, 2007 10:1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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