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설문조사가 끝나고, 설문조사 분석이 끝나고, 현장 작업이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일정이 늦춰지게 되었다. 100명의 설문을 받을 계획인데 아직 61명의 설문만 받았다. 무더운 날씨와 비, 그리고 내가 하고있는 일들이 겹쳐져서 일정이 늘어가게 될 것같다. 이것은 예상못한 일이라 당혹스럽다.
아무튼 곧 설문을 끝내고 현장작업에 들어가리라!
■ 참여자: 노성철
■ 참여 제목: 여러분 부자되세요.
■ 참여 방식:
- 신용카드 사용액 기준으로 두 사람 선정한다. (50만원 이하 한 명 / 50만원 이상 한 명)
- 각자 신용카드 고객상담 센터에 전화를 한다.
- 카드 해지 프로세스를 탄다.
- 카드 해지 철회 시 2~3만원을 통장으로 입금하겠다는 메시지 확인 시 성공, 실패 시 카드 해지 취소.
■ 참여 배경:
원가보다 훨 비싼 부가 서비스 이용료, 비싼 현금인출 수수료, 현금서비스 이자.
그들은 오늘도 우리를 등쳐먹기 위한 잔머리 굴리기를 서슴치 않는다.
어떻게 계속 당하고만 있으랴. 그들을 등쳐먹기 위한 팁을 나날이 개발해 ‘방송’하고 싶다
* 참고: 카드회사는 고객의 월 사용액을 기준으로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종류와 해지 권유 프로그램이 다릅니다. 카드 회사 마다 기준이 있느데 월 50만원 사용자인 경우 해지하지 못하게 2만원 상당의 현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참여자: indigofera 이지연
■ 참여 제목: 우아한 Mrs.풍문여고생에게 매점을
■ 참여 방식:
- 풍문여고에 전화를 한다.
- 교육청에 전화를 한다.
- 종로구청에 전화를 한다.
- 각 루트에 전화를 해 봄으로써 어떤 루트가 가장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지 본다.
- 교육청 전자 민원실(웹상)을 통한 방법으로 얻은 방안과 소요 시간을 서로 비교해 본다. (7/22 PM 2 시경 질문 등록)
- 이를 통해 공공서비스의 접근성과, 한 개인이 전화로써 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본다.
■ 참여 배경:
“먹어라, 네 시작은 비쩍 골았으나 그 끝은 비대하리라.”
몇 년 동안 풍문여고에는 매점이 없다.
우리의 풍문여고 학생들은 휴대용 전화기를 이용하여 슈퍼마켓 아줌마를 호출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가며 그들은 풍문여고 담벼락에서 만난다.
아줌마는 간식거리가 든 검은 봉지를 학교 안으로 던지고,
우리의 우아한 풍문여고 학생들은 날렵하게 검은 봉지를 받아,
반대편으로 우아하게 돈을 던진다.
‘미술로 등 긁기’는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관계에 대한 실험 프로젝트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그 첫 번째 사업으로 [‘05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 ‘05 삼백만원 프로젝트
◎ 주 최 : 기획창작공간 산방
◎ 총괄기획 : 이경복
◎ 진 행 : 송지영, 박야일
◎ 참 여 : 한명의 기획자가 한명의 미술가를 추천하여 1개 팀을 구성함
(총 7 팀)
기획자 : 김준기, 민병직, 오혜주, 이병희, 이은주, 윤태건, 최금수
미술가 : 강영민, 김연태, 안중경, 양아치, 이기일, 이호진, 정은영
◎ 기 간 : 2005년 6월~11월
◎ 장 소 : 서울 곳곳
(등촌동, 방배3동, 양재동양재천, 안국동, 사당동현충원,우면동 뚝방마을, 서교동)
◎ 관람방법 : 인터넷 (산방 홈페이지 및 참여미술가들의 개인 블로그)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남양알로에, 주)두산의류BG
[‘05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자신의 한 달 인건비가 포함된 300만원을 지원받은 미술가가 본인의 주 생활공간(거주지 또는 작업실)을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단위의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해보는 것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1)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미술가의 생존방식
2) 현재 1% 미술의 물량적이고 편중된 성격에 대한 구체적 대안
3) 바깥미술의 다양한 접근 방식
4) 미술을 매개로 한 미술가와 주민의 소통 방법
5) 미술 유통에 있어 구성주체들의 관계 및 역할
6) 미술가들의 새로운 창작방식 및 방향 」등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 가능한 정보로 구축 하여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이다.
이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작업진행에 있어 몇 가지 과제수행원칙과 방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프로젝트 준비 및 진행 과정은 참여 작가 개인의 블로그와 기획창작공간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생생하게 프로젝트 수행 상황을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주)남양알로에, (주)두산의류 BG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2. 프로젝트의 관람
● 각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볼 수 있으며 덧글을 통한 간접적
참여가 가능하다.
● 각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어려움, 새로운 발견 등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다.
● 각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 다른 작가들의 블로그가 링크되어 있어 쉽게 다른 작업 현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프로젝트 여행’이 가능하다.
● 기획창작공간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서 모든 작가의 작업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3. 프로젝트 주요 키워드
1) 삼백만원
프로젝트 진행에 따른 미술가 한 달 인건비(180만원)와 작품진행 경비(120만원)가 합산된 금액이다. 인건비 180만원은 2002년 노동자 평균임금에 근거하고 있으나
향후 보다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으로 이번 프로젝트 진행결과를 통해 다음
프로젝트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인건비의 책정은 작품제작비 지원에
한정되는 기존관행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미술가와 사회의 건강한 관계에 대한 접근
통로이기도하다.
2) 블로그
블로그가 갖는 ‘미디어’로서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프로젝트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강화하고 미술의 정적 소통측면에 동적요소를 부여한다. 미술가는 완성된 작품만이 아닌 작업의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미술소비자와 공유함으로써 그 과정에서의 소통을 포함하여 정지된 작품이 아닌 다이나믹한 드라마로서의 미술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미술활동은 그 물리적 장소를 떠나서도 감상의 대상이
되며 또 다른 미술활동들에도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3) 바깥미술
전시장 또는 미술가의 개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에 대한 공간적 측면에서의
대응어로서 현재 통용되는 공공미술 등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아직 공적 또는 학문적으로 자리 잡은 용어는 아니다.
4) 최소단위 지역사회
현대사회의 지역사회는 과거의 공동체처럼 지리적 측면에 의해 규정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지리적 측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다음 프로젝트에 있어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그동안 친척동생들의 도움으로 설문조사를 더 진행했다. 나는 양재천 곳곳을 촬영했다. 21명의 시민으로부터 설문을 했고 설문자체를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동생들이 조금 서운해했지만 뭐..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일에 상처받을 순 없다.
나도 거의 매일 양재천에 산책을 나오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양재천이 다르게 보인다. 양재천의 각종 시설물( 산책로, 인라인 스케이트장, 운동시설, 화장실 등)은 제대로 되어있는지, 물은 깨끗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시각에 나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게 된다. 깨끗하게 보이던 양재천 곳곳에 쓰레기들이 나뒹굴기도 하고
서초구 관할 양재천과 강남구 관할 양재천의 관리수준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오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건널 수 없다는 것, 너구리가 살고 있다는 것, 개를 데리고 산책나오는 사람들이 많고, 화장실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 등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중년의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다가 큰 수술을 한 후 양재천에 쉬러 매일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 아파보이던 표정은 그것 때문이었을까.. 양재천은 어떤 치유의 기능도 하고 있었다.
몇 년전 나에게도 굉장히 슬픈 일이 있었다. 그때 나의 슬픔을 쏟아놓기 위해선 아주 커다란 공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혼자 앉아있는 사람들 중에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사람들을 만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양재천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more...
핸드폰 방송국에 참여 가능한 분이라 추천한 김의 소개로 안국동 주민 1호를 만났습니다. (*안국동 주민 1호: 한의원을 운영하며 일과시간 이후 즐거운 음악생활을 하시는 분입니다.) 안국동 주민 1호님은 김양이 제안한 프로그램은 부담스러워 하시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으로 참여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지역 공간이 있는데 북촌 문화센터와 우리집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였습니다. 두 공간을 적절히 이용해 김양의 프로그램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제안하셨습니다. (상위의 이미지에서 보이는 공간은 우리집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
■ 생각해봐야 할 몇 가지.
1. 주민 참여에 대한 생각: 주민이 원하는 미술 프로젝트와 작가가 원하는 프로젝트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있다. 이런 간극이 프로젝트와 관계 가능한가?
2. 지역 공간 참여에 대한 생각: 지역 공간은 지역의 프로슈머로써 자리하지만 직접적인 주민과의 교류는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이런 간극이 프로젝트와 관계 가능한가?
작가 안중경님이 최근 이사한 양재동 주변의 양재천에서 설문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양재천에 산책 나온 분들을 대상으로 얼머나 자주 이용하는지,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 등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의 문제를 다수의 의견을 물어 찾고자 하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주민 참여의 방법입니다.
혹시 양재천 영동 1교와 4교 사이를 이용하신다면 그동안 생각하신 불편들을 편안히
말씀해주세요^^*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인지 오후 5시를 지나는 시각인데도 양재천은 한산해 보인다. 얼마전 사전조사를 해보았지만 설문조사를 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다가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짐짓 딴청을 피우면서 경계의 끈을 당긴다. 나의 입에서 익숙하고 상냥한 한국어가 발음되는 순간(물론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팽팽하게 당겨졌던 경계의 끈은 끊어진다. 혹은 더 당겨진다. 처음 설문을 시작한 곳은 영동 1교.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있는 곳이다.
친구 하나가 나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준비한 설문의 내용은 이렇다.
-양재천에 나와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양재천에 얼마나 자주 나오시나요?
-양재천에 나오는 시간은 하루 중 어느 때 인가요?
-양재천에 머무는 시간은 어느 정도 인가요?
-양재천을 이용하면서 느낀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양재천을 이용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그 밖에 개선을 바라는 사항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거주하는 동: 성별: 나이:
오늘은 모두 23명의 시민으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설문자체를 거절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설문조사가 끝나면 그 내용을 공개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해 보리라.
① 7월 21일 ~ 7월 27일 : 현장 설문조사 실행, 조사 결과 분석, 해결 방법 모색
② 7월 28일 ~ 8월 15일 : 현장에서 작업 진행
③ 8월 16일 ~ 8월 20일 : 현장 설문조사 실행, 조사 결과 분석(프로젝트 전후 비교)
* 작업의 모든 과정을 블로그(http://samlim72.egloos.com)에 올린다.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아직 국립현충원 측에서는 연락이 없다. 국방부에서 서류가 오래 걸리는가 보다.
이계안 의원 사무실에는 전화로 설명을 하고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날 연락이 왔다. 사무실로 한번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실로 방문하였더니 이계안 의원은 국회에 계신다고 하여 담당이사와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현충원 외곽담장에 두개의 출입문을 개방한 것이 이계안 의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 거란 생각이 있어서였다.
이계안 의원은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국립현충원 외곽 18만평의 근린공원화와 한강의 전망을 볼 수 있도록 외곽담장을 투명담장으로 교체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확정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이 프로젝트가 성공된다면 이와 관련한 작업은 2년 정도 있다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여 성장했을때 추억을 가질 수 있는 작업은 의미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계안 의원은 만나질 못했지만 담당이사께서 국방부와 좋은 방향으로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국방부의 연락을 기다리며 조만간 동작구청을 방문해야겠다.
잠깐 중학교때 돌려보던 '순환문고' 따위를 떠올려 봅니다.
뭐, 방법이 어쨋건 일종의 도서관 시스템인 것인데,
정류소라는 말에 도서관이라는 말을 살짝 포개어 봅니다.
...좀 안어울리는 군요.-_-
일테면 이런것입니다.
정류소에서 기다리며 이야기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해놓습니다.
(이야기책의 내용은 앞선 포스트에 올린것과 같은 흡사한 내용들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 집어들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죠.)
이야기책은 한 정류장에서, 혹은 몇몇의 정류장에 마련됩니다.
이야기책은 버스에 들고 탈 수 있으며, 버스에서 내린 다른 정류소에 다시 놓여지도록 합니다.
(어떻게? 메뉴얼을 적어야겠죠. 어지간하면 지켜질 수 있도록 )
누군가 정류소에서 이야기책을 줍는다.
->버스에 들고 탄다.
->읽는다 (메모를 해도 무방. 메모를 하면 더 좋겠죠.)
->내리는 곳의 정류장에 반납.
->누군가 다시 집어 든다.
->반복
그래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흐릅니다.
문제는 순환되는 과정이 채집되기 힘들다는데에 있습니다.
순환문고는 꼭 중간에 몇권이 분실되곤 했죠.
몇회에 걸쳐 작정하고 미행을 해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_-
차가운 손을 가진 이방인의 이야기 The Story about an Alien with Cold Hands
#0.
그 여자가 대체 어디에서 이 도시로 들어오게 된 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떠나는 이 익명의 도시에서, 그 여자의 행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 여자는 -나 또한 그렇듯이- 이 도시를 잠시 거쳐가는 수많은 이방인들 중의 하나일 것이 분명할 터였다.
#1.
내가 이 도시로 들어온 것은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하루하루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뿐,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을 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힘들었을 때, 차라리 누군가에게 내 영혼을 팔아 치우고 싶을 지경이었을 그 때, 나는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것을 처분하고 달랑 여행가방 하나를 채워 길을 나섰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잘 떠오르지 않았고, 생각만큼 유연한 '유목'을 할 수 있지도 않았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삶을 얻었지만, 나는 언제나, 떠날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머무를 것을 생각하곤 했다. 머무를 장소가 정해지면,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들, 조금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한 살림살이들이 필요했다. 결핍의 느낌이란 순식간에 불안을 부르고, 피해의식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보다 안전하고 보다 안락한 생활이란 어쩌면 다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사실 전혀 손에 닿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 낯선 도시 위에서 겁에 질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보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누군가 함께 있어줄 사람마저 필요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기대하고, 쉽게 쉽게 겁에 질리고, 공허한 기분이 되어버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몸만큼이나 모든 경우를 적응해 나가고, 오히려 그 상황에 맞추어 변해가기까지 하는 것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토록, 단 한 순간마저 참아내기 힘들만큼 괴로워했던 내 몸은 이렇게 줄기차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어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가진 물건들은 하나 둘 없어져 버리거나 제 명을 끊어갔다. 작은 귀걸이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손에 끼고 있던 반지가 어느 샌가 두 쪽으로 쪼개어져 버렸고, 어느 날은 멀쩡하던 신발이 찢어지더니, 또 어느 날은 순식간에 목걸이가 끊어지면서 구슬들이 온통 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구슬들을 힘들게 주워 모아 몇 시간이나 공들여 꿰어보았지만, 목걸이는 본래 길이의 반도 되지 않았다. 가방의 끈이 끊어지거나, 머리카락을 묶은 고무줄이 끊어져버리는가 하면, 얼마 되지 않는 옷 중의 하나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문을 잠그려고 열쇠를 꺼냈을 땐 열쇠고리의 장식에 금이 가 있기도 했다. 밥을 먹으려는데 젓가락이 부러지고, 그릇의 이가 나가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내 몸은 이 도시의 모든 낯섦에, 적어도 내 몸에 지닌 물건들보다는 좀더 무디게 반응하면서 잠시도 숨쉬기를 멈추지 않았다.
#2.
그 여자를 처음 본 건, 이 도시로 들어와 잠시 머무르던 한 지저분한 모텔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꽤 긴 시간 동안이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루해 하던 몇몇의 사람들 틈에 여자도 끼어있었는데, 무척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그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자기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새빨간 색의 여행용 가방에 한쪽 팔꿈치를 걸치는 것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그 여자는 어딘가로 떠나는 중이거나, 혹은 어디에선가 떠나온 것임에 분명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던 몇몇의 사람들 중에서 유독 그 여자를 관심 있게 살피기 시작한 것은 여자의 손이 언뜻 푸른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끝나고 있다고는 했지만,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이 도시의 날씨란 지독하게 변덕스러워서, 따뜻해지는가 하면 이내 매서운 돌풍이 불기도 했으니, 종종 사람들은 추위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날도 갑작스레 불어 닥친 바람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지만, 저렇게나 파래지는 손이라니. 여자의 손가락은 지나치게 가늘었고, 지나치게 푸른 기를 띄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사람의 손이 그렇게 파래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계속해서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에도, 여자는 연신 자신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는데, 여자의 그런 노력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그 가냘픈 양손의 푸른 기는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곧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고, 다행이 여자가 그 버스에 올라탔기에 나는 일부러 여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 안에서도 여자의 신경질적인 손놀림은 그치지 않았고 푸른 기 역시 그대로였다. 나는 어떻게든 그 여자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갑자기 지금까지의 나의 행동이 무척 우스운 짓처럼 느껴져 창 밖으로 눈을 돌려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머잖아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곳에 정차했고, 버스가 그곳을 떠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버스 안 여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3.
낯선 사람에게 관심 갖는 일 따위는 적어도 나에게는 치가 떨리도록 혐오하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상하리만큼 다른 이들의 일에 관심을 갖고, 가끔은 관심을 넘어서 지나칠 정도의 참견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진심으로 살의를 느껴왔던가. 그럼에도 나는 간절히 이 여자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욕망. 그것은 분명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감정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더욱 스스로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것이 나에게 있어 용인되거나, 그럴 수 없는 것이며, 나는 또한 얼마만큼 단호하게 내 안의 감정들에 대해 정의 내리고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최대한의 자제력을 동원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 이상한 감정을 떨어내려 애를 써 보았지만, 이 여자와 말해야만 한다는 제어할 수 없는 욕구는 이미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내고 있는 중이었다.
#4.
여자는 손을 주무르는 것을 포기하고는 고개를 창 쪽으로 살짝 돌리며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자의 얼굴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고, 여자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바짝 쓸어 넘겼다. 여전히 창백한 푸른빛의 손. 버스 안은 무척 따뜻해서 창문은 온통 부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옷깃을 꽁꽁 여미던 사람들은 겉옷을 하나 둘 씩 벗어 들었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추위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손을 쥐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 손이 분명히 차가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여자가 다시 손을 들어 김이 잔뜩 서린 버스의 창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소리를 내면서 여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 단조로운 마찰음이 여자의 손이 울고 있는 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빠져 넋을 잃고 여자의 손놀림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5.
여자의 손이 울고 있다는 건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 손으로 우는 사람을 본적은 없었지만 이 여자의 손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서럽게 우는, 그런 여자들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나에게는 그 연상작용을 설명할 재간이란 없다. 그렇지만 저렇게나 푸른 손을 가진 사람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6.
아까부터 날 보고 있었죠? 여자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너무나 놀라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여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때까지의 나의 행동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떠올리고, 다시 수정하고, 떠올리고, 지워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둔감할 수가. 몇 번이고, 입을 떼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재치 있는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게 미안한 표정은 할 필요 없어요. 나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까.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정신 없이 맥박이 뛰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여자에게 말했다. 손이, 손이 무척 시렵지 않나요. 여자의 얼굴에 짧은 순간 미소가 지나갔고, 나는 나의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말주변을 탓하고 있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요, 무척. 누구든 그걸 알아차릴 수 있겠죠, 이렇게 파랗게 질린 손이라니.
#7.
어디서 내리나요? 짐, 이 무거워 보이는데, 도와, 드려, 도, 될, 까요. 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고 여자가 대답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나에겐 마땅히 가야 할 목적지가 없는 걸요. 찾아야 할 곳이 있긴 하지만 말예요. 실은 어디서 내려야 할까를 생각 중 이였어요. 버스에 탄 이후부터 줄곧. 이 짐을 끌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까마득해서 몇 번이나 내리는걸 포기하기도 했지만요. 여자의 푸른 손이 빨간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우습지 않나요, 이런 변변찮은 몸뚱아리 하나를 지탱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아직 버려야 할 것들,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텐데, 이상하게도 짐은 차츰차츰 늘어만 가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여행을 지속하기엔 이 가방은 너무 무거운데. 여자의 손은 가방 언저리에서 천천히 미동하고, 나는 그 기묘한 색깔의 차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목적지 없이 계속되는 여행이란 나에게도 지워진 숙제였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을 찾아야 할지 조차 모르고 있다. 이 여자는 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자못 어리둥절한 표정을 그녀에게 지어 보이자 여자는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는 거죠? 뭐가 그리 궁금한 건가요? 그렇게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니, 사람들은 모두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게 분명해요. 나는 단 한번도 소통이란 단어를 내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과도 역시 소통할 수 없을 테죠. 그건 마치 내가 아무와도 손을 잡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걸 거예요. 아무도 나와 손잡으려 하지 않아요. 손, 이 손을 잡는다 해도,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죠. 당연해요. 그토록 차가운 느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굉장히,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이겠죠. 여자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의 풍경에 눈을 멈추고 다시 두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8.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예요. 꽤 긴 시간의 침묵이 지난 후에야 나는 다시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고, 당신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나는. 나는 당신의 손이 울고 있는 걸 봤어요. 바보 같은 소리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손은 울고 있어요. 분명히. 나는 그걸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여자는 아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창 밖을 넘어다보는 여자의 눈꺼풀이 가끔씩 깜빡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자의 움직임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여자가 나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도 내가 대 여섯쯤 된 어린 여자애였을 때, 그때 나는 어른들은 울지 못한다고 믿었어요. 나는 너무나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억지로 눈물을 참곤 했었죠. 결코 울지 않게 되는 날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을 까요. 아이들은 매일매일 쉬지 않고 자라고 있는 데 말예요.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어른 흉내를 내면서, 언젠가 정말 어른이 될 날만을 기다렸어요. 어느 날 꽤 곤한 낮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졌어요. 나는 자리에 누운 채로 두리번거렸죠. 내 발치쯤엔 엄마가 앉아있었는데, 아래쪽으로 떨군 고개 때문에 목뼈가 징그럽게 두드러져 보였고, 엄마의 어깨와 등이 조금씩, 조금씩 들썩거리고 있었죠. 목에서부터 등으로 흘러내리는 뼈의 모양이 금방이라도 일그러질 듯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나는 어른은 울지 않는 존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고요하지만 치열한 움직임을 우는 행위와 쉽게 연결시킬 수 없었어요. 엄마는 곧 무릎께에 모으고 있던 손을 들어 눈가를 재빠르게 훔쳐낸 후 내 쪽으로 돌아앉았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는 척 눈을 감아 버렸죠. 덮고 있던 이불 밖으로 나와있던 내 손을 이불 속에 넣어주고 엄마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문이 끝까지 닫히는걸 확인하고 나는 손을 다시 빼내어 눈앞으로 가져왔죠. 엄마의 손은 분명히 축축한 느낌이었고, 엄마의 손이 닿았던 내 손까지 젖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았던 거예요. 그건 정말이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사건 이였어요. 나는 아직도 몸을 들썩이며 울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뒷모습을 잊지 못해요. 어린 시절의 그걸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의, 어른이 되어버린 여자의 눈물이 뭘 의미하는 지 알 것 같아요. 나는 예의 그 어눌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힘들게 말을 끝냈고,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버스는 이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9.
울고 있는 손이라니.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여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주길 바랬지만, 여자는 여전히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차가운 손을 갖게 된 건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누구와도 대화하기 힘들어 질 때쯤 나는 이미 누구와도 손잡을 수 없었으니까. 아, 누구도 나와 손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죠. 나는 점점 모든 관심의 밖으로 밀려났고, 모든 것으로부터 낯설어졌어요. 어느 순간에건, 어느 곳에서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느낌은 굉장히 미묘한 것이더군요. 아무 것도 짐이 될 것이 없는 삶인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무게를 느껴 지나치게 피곤해 하고, 종종 겁에 질려 있기도 해요. 머무르면 곧 떠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도, 나는 그 잠시의 머무름을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언제나 그곳이 마지막 장소가 되기를 기대해 보지만 또 이렇게 어딘 가로 떠나고 있어요. 날마다 제어하기 힘든 모순된 마음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뒤섞여 나를 괴롭히고, 두 손은 내 힘으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점점 더 차갑고 푸르게 변해가요. 할머니가 남긴 지도를 들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 지도에 표시된 장소는 바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그 어딘가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이 지도는 길을 떠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 길을 찾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도대체 나는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얼마나 많은 곳들을 거친 후에야 나의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여자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물었다. 그곳엔, 혹,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당신의 생각대로 이 손이 울고 있는 것이라면, 그곳에서 내 손들은 눈물을 멈출 수 있는 걸까요. 내가 머뭇거리며 여자에게 무언가 건낼 말을 찾고 있을 때, 버스가 서서히 속력을 늦추다가 멈춰 섰고, 버스기사는 마지막 정류소임을 외쳤다. 우리, 이제 내릴 수밖에 없겠네요. 짐을 내리는 걸 도와 드릴게요. 나는 서둘러 일어나 여자의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아, 내가 할 수 있어요.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뒤따라 일어났고, 손을 뻗어 가방의 손잡이를 뺏어 쥐려 했다. 여자의 손이 내 손위로 겹쳐지자, 여자는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여자는 걱정스런 얼굴로 거듭 사과해왔다. 손이 닿았던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걸까, 나는 사실 여자의 손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괜찮아요. 나는 가방을 끌고 버스의 출구 쪽으로 나와, 곧 뒤따라 나온 그녀와 함께 가방을 버스 밖으로 끌어내렸다. 꽤 덩치가 커 보였던 가방은 의외로 그리 무겁지 않았다. 버스가 큰 소음을 남기고 떠나버린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그 길 위에 잠시 서 있어야만 했다.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 끝으로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저 나무 밑으로 가서 조금 쉬면서 어디로 갈까를 정해야겠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내리다니. 그렇지만 여전히 추워요, 그렇죠? 어서 따뜻해 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좀더 가볍게 떠날 수 있을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진심으로. 여자는 가볍게 목을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돌아섰다.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여자는 그 풍경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가방을 끌고 움직이는 여자의 뒷모습이 서서히 풍경과 하나가 되어갔다. 저, 잠깐만요. 나는 이 휘발하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다급히 여자를 불러 세우고는 여자를 향해 힘껏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선 여자에게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나는, 말했다. 당신이 머무를 곳을 찾는 그 여행, 나와. 함께. 하. 지. 않을래요. 나는 숨을 고르며 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가 거절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함께가 아니어도, 우리는 어차피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 지난한 여행의 끝,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어디쯤에서 다시 서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여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손에 쥐고 있던 여행가방의 손잡이를 놓고, 나의 제안에 대답하는 대신 그 푸른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기쁘게 여자의 손을 잡았다. 나에겐 이 푸른 손이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c) 차가운 손을 가진 이방인의 이야기, 정은영, 2002
정류소에서 만나 흐르는 데로 길을 가는 이 여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소통이라는 문제입니다. 정류소, 버스, 공간, 이동, 경계, 흐름, 여자, 소통은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가 될 것 같습니다.
정류소라는 말은 늘 '기다림'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곤 합니다. 전통적으로'기다림'늘 늘 여성들의 미덕이었기도 했죠. 길떠난 오디세우스 왕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진정성은 바로 그 '기다림'의 미덕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그간 몇몇의 프로젝트를 통해 여행하는 여성,자신의 위치를 거듭해 바꾸고 탈주하는 여성주체를 재현해 왔습니다.
그 여행은 여성이 구성된 공간을 탈주하고 스스로를 다르게 위치(re/positioning)시키기라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고, '욕망과 공포' 사이에 있는 여행입니다.
실제로, 여성들의 여행이란 전통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것, 혹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죠. 여성의 미덕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에게 투사되어왔지 내키는 대로 길을 떠나 온갖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오디세우스에게 투사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은 "창녀"이거나 "거지"인 비천한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들레르의 산책자(Flaneur)는 근대화와 도시문명의 탄생과 함께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외부세계란 위험이 도사리는 곳, 비천함으로 전락할 수 있는 곳이고 '집','지역' 혹은 '민족국가'라는 내부세계는 그녀들을 억압합니다.
더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세계자본의 재편성 위에서, 여성의 여행 혹은 국가경계 넘기라는 이 장구한 프로젝트는 값싼 노동력의 제공이나 성적인 기여에 집중될 뿐입니다. 현실의 무게가 등을 누르고 목을 조여올 때 많은 사람들은 여행과 일탈을 꿈꾸지만, 여성들에게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낭만이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오는 것이기 쉽습니다.그럼에도 늘 여행은 동경해야할 무언가가 되곤 합니다. 그랫 여자들에게 여행은 욕망과 공포로 느껴집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류소'를 생각해 봅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이 버스를 남성에, 정류소를 여성에 비유함으로써 다시한번 이 고정적인 젠더정치를 재현해 버리듯이 정류장은 꾸준히 (기다리는)'여성'으로 젠더화 되고 있습니다.(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너무 명료하죠.)
나는 삼백만원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다림'으로 등치되는 정류소의 의미를 바꾸어보려고 합니다. 정停류留소所를 정停류流소所 로 바꾸어냄으로서 '기다림'의 장소를 끊임없이 사이공간을 흐르는 떠나기 위한장소, 아무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장소로 의미화 하려고 합니다.
제가 주로 뭉개는 장소는 용산구-마포구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마포라 불리우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용산구인 산천동이라는 경계적(!)동네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마포구를 통과해 마포구 창전동 쌈지 스페이스의 작업실까지 가는
왕복여행이 제 하루의 주된 여행인 셈이죠.
아래 사진은 와우공원에서 내려다본 홍대지역입니다.
사실 땀빼면서 운동하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저로서는
인근의 공원따위는 별달리 관심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일먼저 생각난건 이 와우공원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아주 단순하게도, "공公"원과 "공公"공미술이 '공'자 돌림이라는...-_-
해서 백팔계단도 넘을 것 같은 와우공원의 꼭대기까지 몇번을 올랐지만,
아무런 영감도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었습니다.
어쨋든 지정학적인 지역으로는 제가 주로 뭉개고 있는 홍대지역으로 잡아보려합니다.
그런데 홍대로 그 지역을 정하고 나니 참 앞이 깜깜합니다.
이 지역은 그야말로 문화의 최전선, 오만가지 문화가 너무 오바해서 향유되는
문화적 폭격지이기 때문이죠.
거참. 먹을만큼 먹은 이들을 위해 무얼 또 건네주어야하는걸까요.
유학후 돌아와 처음으로 잡은 일자리는
서울의 H 대안학교와 부산의 B전문대학의 강사였다.
지난학기 이 두학교에서의 강의는 말하자면 임금노동이었던 셈.
서울의 학교에서는 시간당 3만 5천원의 제법 괜찬은 보수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당 4시간.
부산의 학교에서는 시간단 1만 6천원의 뒤로 넘어갈 보수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당 4시간.
서울의 학교에서 약 오십몇만원의 강의료가 매달 지급되었으니,
나의 연봉은 약 오백만원가량.
부산의 학교에서는 약 이십여만원의 강의료가 매달 지급되었으니,
이와 합치면 나의 연봉은 약 육백 오십여만원 가량.
그런데 매우 이율배반적으로 나의 연봉은 약 삼백여만원으로 하향조정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인즉 부산행 왕복 KTX의 운임을 제해야했기 때문.
-_-
그런 나에게 삼백만원을 줄테니 작업을 해보겠냐는 제안은
참으로 돈의 유혹이 아닐수가 없는데,
심지어 그 삼백만원이 고스란히 작업비가 아니라
작가의 생활비를 책정해 챙기라고 하는 통에
나는 제법 떨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가뭄의 한줄 단비같은 프로젝트에 제대로 협조하지 못하고,
수면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무일푼 인생의 태만을 고치지 못해, 늘상 책임자의 전화를 놓치거나,
밤새도록 어떻게 돈을 쓰면 잘썼다는 소문이 날까를 고민하느라
눈밑에는 다크써클이 생기고 아랫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과 함께,
15일이 데드라인이었던 작품기획서를 여적 쓰지 못하고는
이것은 혹 (꿈에나 그리던) 무의식적 사보타주는 아닐까 하며,
내심 황홀해 하고 있는 것이다.
-_-
2_1.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에선 폐쇠된(not in service)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등장. 이니드가 말한다. "이 정류장은 2년전부터 노선이 다 없어졌걸랑요?." 할아버지가 말한다. "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2_2. 아무도 정류소에선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정류소는 기다림보다는 떠남에 목적이 있을텐데 왜 기다림에 방점이 찍히는 걸까.
1955년 서울 동작동에 설립한 국립현충원 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이 잠들어 계시는 민족의 성역이다. 이곳은 영령들이 영면하는 안식처로, 희생과 위훈을 기리며 추념하는 추모의 장소로, 또한 시민 정서순화의 공간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외곽담장에 출입문을 설치해 지역 주민들의 현충원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였다.
국립현충원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시멘트 구조물로 되어있으며 위로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아무런 색상도 칠해져 있지 않아 이곳을 산책하는 주민들에게 정서적으로 건조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곳을 산책하는 주민들은 현충원과 근접한 사당동, 상도동, 흑석동 지역의 주민들이며 멀게는 봉천동, 반포동, 대방동 그리고 내가 있는 작업실과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다. 그런 이유로 요즘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버린 강아지와 이곳을 자주 운동 삼아 가곤 한다.
이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조사를 통하여 주민들의 산책로와 현충원의 담장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진행하는 방법으로 이곳을 아름답게 가꾸는 미술행사이다.
현충원 측에 이 프로젝트에 관한 문서를 보냈으나 어쩌면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결과는 기다려야 하겠지만 나는 이곳의 담장에 설치된 철조망을 철거하는 작업과 현충원 주위의 초등학교 (남성초등학교, 중앙대부속초등학교, 신남성초등학교, 강남초등학교, 상도초등학교)와 그리고 교사들의 도움으로 담장을 초등학생들이 완성하는 벽화를 진행할 예정이며 동작구청과 지역 국회의원의 도움도 빌어볼 생각이다
나는 지난 2003년 12월경 혼자 머물면서 작업구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여 적당한 장소를 다방면으로 찾아보았으나 임대료 등의 조건이 맞지 않아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근에 있는 우면동 무허가 지역에 싸게 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지역을 찾게 되었다.
2004년 2월경 ‘뚝방마을’이라고 불리는 우면동의 무허가 마을 안에 있는 작은 쪽방을 얻게되었고, 아직까지 그곳을 드나들며 지내고 있다. 이 공간의 천정이 매우 낮고 협소하기 때문에 최근 개인전을 준비했던 몇 개월 간은 선배의 작업실을 임시로 빌려서 전시준비를 했었지만, 우면동의 이 작업실은 내가 혼자 힘으로 여러 가지를 해결하며 작업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고 쉴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또한 나는 이곳 지역의 생활상을 직접 접하면서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 우면동 무허가 하우스 지역의 지리, 환경, 조건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이웃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 지역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약 25년 전 쯤 몇몇 소수민들이 뚝방마을이라고 불리우는 이 지역에 들어와 개울가 뚝 옆에 간이식으로 집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수백가구의 무허가 혹은 대형 원예 하우스 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면동 무허가 지역은 서초구 양재시민공원과 교육문화회관을 지나 과천 어린이대공원 가는 방향으로 평방 삼사천 킬로미터 이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난 예술의 전당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면 십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초동 주상복합과 고급 빌라 주택지역에 다다른다. 이 곳은 최근 개포동 무허가 지역과 함께 강남 재개발 그린벨트 등에 부동산 투기 및 정치 논쟁 지역으로 시끄러웠으나 개포지역 만큼의 큰 논쟁거리나 사회적 이슈는 되지 못하고 있다.
3. 뚝방 마을
우면동 무허가 지역 중에서도 양재천의 뚝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약 50-60 가구의 가장 빈약하고 열악한 섹션을 뚝방마을이라고 부른다. 위치적으로는 우면동 가운데 쯤 있으나 바로 옆이 양재천이기 때문에 우천시 물이 빈번이 범람하고 겨울엔 집 바닥이 얼어터지는 열악한 지역이다.
뚝방지역의 각 가구들에 붙여진 번지수는 등본상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인 숫자가 아니라 호칭을 위한 편의상의 숫자일 뿐이다. 우면동 전체인구는 판가름하기 힘들지만 뚝방마을은 서너개 정도의 다른 지역구를 갖고 있으며, 최소 삼사백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거인들은 이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해오셨던 어른과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 안에는 방을 서너개씩 갖춘 큰 집들도 있고 내 작업실처럼 방 한두개가 있는 집들도 있다. 서로 따닥따닥 붙어서 얽혀있기 때문에 누구의 담인지 구별할 수 없으며 집들 사이의 길들은 마치 미로를 연상시킨다.
내 작업실은 양재천 개울가에 가장 가깝게 붙어있는 두세 집 중 한 곳에 딸려 있으며, 양재하천 쪽으로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다가 흙 계단으로 십오미터쯤 내려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4. 이 지역의 문제점
나는 사회운동가는 아니지만 이곳에 들어오면서 많은 문제와 모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막연한 감상이 아닌 현실 속의 문제들이며 불편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들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서초동에서 불과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있는 이 지역 주민들은 늘 자연환경, 그리고 사회의 시선과 투쟁하고 있다. 나는 수개월 전부터 반장님과 몇몇 어른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 곳에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공공시설이 거의 없고 단지 몇 개의 간이 재래식 화장실과 연탄과 집기를 모아놓는 간이 창고가 전부이다. 마을 중심에 교회가 하나 있어 여러 가지 공공 업무를 대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여러 주민들이 토론할 수 있고 노인들이 쉴 수 있는 쉼터로써의 공동의 공간이다. 이 곳은 수십 년간 터를 닦고 지내온 지역주민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지만 무허가 지역이기 때문에 서울시나 서초구청과 대면하여 해결해야 할 일들이 종종 생긴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주민들간의 회의가 잦지만, 집도 겨우 서있는 이 곳에는 여유있게 나와 앉아있을 만한 편안한 의자나 벤치 하나를 찾아볼 수 없다. 대낮에 어른들이 뚝방 길가에 서서 혹은 쭈그려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역 주민들이 조금이나마 쾌적하게 공동의 회의를 열고 담소할 수 있는 시설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무허가 마을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민 복지를 위한 마땅한 개선책이 없는 실정이다.
5. 우면동 뚝방마을에서의 삼백만원 프로젝트
1) 개요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우리는 주민들을 위한 공공 휴식장소 겸 회의장소가 될 수 있는 소규모 회관을 만들기로 했다. 이 시설은 간이식 건물로서 일반적인 마을회관같이 거대하고 튼튼한 구조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뚝방마을에 사는 몇몇의 이웃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작더라도 이들의 일상에 꼭 필요한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회관의 위치는 나의 작업실과 반장님의 집 근처의 반경 20-30m 안으로 지정하려 한다. 애초에 뚝방 옆 개울길가에 있는 장소 두 곳을 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다가 그 중 조금 더 크고 아늑한 장소를 최종적으로 택하게 되었다. 현재 그곳에는 호박 넝쿨과 판자로 된 작은 창고가 있다. 이 창고를 허물고 그 위에 간이식으로 작은 공간을 지을 것이다.
2) 예산
작업비로 책정된 120만원의 예산 내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이나 부족할 경우 마을 주민들이 공공시설 확충을 위해 모아놓은 기금에서 협조를 얻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 예산이 부족할 경우 주민들의 협조를 얻기보다는 우선 지역의 관공서 지인과 중소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후원과 협조를 먼저 구해볼 생각이다. 많지 않은 예산이지만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서 재미있고 유용한 공간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3) 작업방식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는 사회운동가들이 할 수 있는 일들과는 좀더 다른 각도의 창조적인 접근을 통해서 공공적인 소통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봉사라는 차원으로 공공장소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로서의 새로운 창작활동을 통해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간 나의 작업들이 갤러리 안에서 소수의 미술애호가들과 만나왔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계층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미술은 중산층이나 특정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은 분명 한 사회인으로서 시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과연 무엇이 좋은 미술이고 의미 있는 작업인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를 환경에 반응시키며 실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예술적 탐구며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간이식 마을 회관을 짓고, 그 공간의 외관과 실내를 작품화하여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싸구려 소품과 재료들과 재료들을 이용하면서도 작가로서의 독창적인 표현이 담겨있는 장소를 만듦으로써 지역 주민들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시각적 즐거움과 유쾌함까지도 주는 공간을 창조하고자 한다.
4) 작업 진행시 예상되는 난점
a) 최근 이 지역 사람들은 재개발 등의 문제로 타 지역 여론과 시선들에 오랜 시간 시달려왔으므로 이 지역의 토착민이 아닌 나의 계획에 대해서 방어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된다. 회관 건립이 시행에 옮겨지면서 시각의 차이에 의해서 생기는 마찰이 불가피하며, 다른 번지 지역과의 입장차이로 작은 간이시설의 건축인 경우에도 형평성의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
b) 예산의 문제는 간이시설이므로 짜맞추기 나름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마을과 주민들에게 향후 몇 년 정도는 안전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어야하므로 원자재를 너무 싼 것으로만 쓸 수는 없다. 따라서 시공시 기본예산이 초과되어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
c) 미술 활동과 작품으로서의 역할은 이 지역주민에게는 생소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눈에 거슬리는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취약점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여 나와 이곳 주민들이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 이 모든 문제들이 상당히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으나 이러한 문제들에 부딪혀보고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가로서 사회와 만나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역 특성상 소수의 거칠고 힘있는 의견들을 가장 근접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이 모든 것들이 이 프로젝트의 과정이며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5) 현재까지의 작업 진행 과정과 계획
우면동 뚝방마을에 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은 삼백만원 프로젝트에 대한 제의를 처음 받았던 시기인 두 달 전 즈음이다. 한 달 전 즈음 반장님과 몇몇 이웃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삼주 정도 전에 구체적으로 회관을 건립할 장소를 확인하고 결정하였고, 예산 등에 대한 의논을 거쳤다. 현재 자재에 대한 견적과 구매 루트를 설정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타 지역에 나가있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는 7월 말 경에 좀더 구체적인 안을 확정하고 회관 건립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시민의 신문] 2005. 07. 11
80년대 현장미술 사례자료 모은다
'산방', 장롱 속 기록찾기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미술을 '바깥'으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미술이 사회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벽화나 걸개그림이 등장했고 영정이나 시위 사진 한 장에도 참여 미술 활동이 침투해 들어갔다. 보다 넓은 시공간에서 사회적 참여와 소통을 시도하던 미술은 이미 새롭고 공적인 영역의 단초를 마련해나갔다. 민중미술, 일명 '바깥 미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바깥미술연구공간 '산방'이 민족미술인협의회의 후원으로 80년대 활발했던 미술의 현장 활동에 대한 기록들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한다. '장롱 속의 기록을 찾아서- 80년대 바깥미술 사례 자료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개인 장롱이나 서랍, 앨범 등에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80년대 현장미술 사례 자료들을 모아 기록들을 정리한다는 취지다.
민주화 요구와 대중운동이 활발했고 그에 따른 미술 행위들도 왕성했던 198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 벽화, 걸개그림, 깃발그림, 만장, 영정, 플래카드, 패널, 포스터, 현장 전시 등 바깥에서 행해졌던 현장미술과 관련된 사진 등의 시각 기록물이 그 대상이다.
'산방'은 현재 미술가 개인이나 미술단체, 사진가나 사진단체, 각 미술대학 그림패 등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사진 및 기록물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 등에 수소문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작가들에게 프로젝트의 취지를 알리는 글을 발송한 상태. 사업은 오는 12월 말까지 진행하고 정리된 컨텐츠들은 자료집 형태로 엮어낸다고 한다. 프로젝트 책임자 박야일씨는 '작가들에게 연락과 방문을 통한 취재를 시작했고,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집된 자료 등 진행상황을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 등에 게시해 그 과정을 공개하고 결과물은 자료집, 웹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깥미술연구공간 산방'은 미술가 이경복씨를 중심으로 바깥미술 관련 활동을 하는데 '바깥미술'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공공미술을 포함,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미술적 행위를 칭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문의 02-2201-8063
[컬쳐뉴스] 2005. 06. 28
장롱 속의 기록을 찾아서
80년대 바깥미술운동 사례 자료 아카이브
1980년대 집회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의 걸개그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큰 천에 뚜렷한 윤곽선 형상으로 그려져 건물의 한 벽면을 덮었던 걸개그림은 민중가요와 함께 집회 참여자에게 힘을 불어넣었던 기재였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주었던 현장미술 작품과 이들에 관한 기록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의 앨범 속에, 또는 어느 책상 서랍이나 장롱 속에 갇힌 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는 역사적 기록물, 또는 미술사적 작품이 된 1980년대 현장미술 자료들을 모아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바깥미술연구공간 ‘산방’에서 추진하는 ‘80년대 바깥미술(현장미술)운동 사례 자료 아카이브’가 그것이다.
‘산방’은 ‘공공공간’이나 ‘주민 참여’ 등 바깥미술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연구와 사업을 하는 곳으로 2002년부터 시작된 ‘바깥미술연구공간’이다.
지난해 기획되고 2005년 3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1980년대 미술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던 바깥미술운동의 사진 및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민족미술인협회(이하 민미협)의 ‘민중미술20년사 편찬 사업’과 연계하여 진행되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 등에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장미술에 관한 자료들이 이 사업을 통해 수집, 정리되어 아카이브로 구축될 예정이다. 이렇게 구축된 아카이브는 1980년대 현장미술 운동의 전개 과정과 성과를 살펴보고 현재의 현장미술이 나아가야 할 지점을 짚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산방’ 측은 “정리된 콘텐츠를 자료집 형태로 엮어낼 것이며, 블로그 등의 웹공간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집 대상 자료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전국에서 있었던 현장미술 운동과 관련된 모든 시각매체의 사진과 기록물로, 시각물이 포함된 집회 및 행사 광경, 시각물 제작 및 설치 과정 사진, 그리고 개별 작품의 기록 사진 등에 걸친 모든 이미지 자료와 관련 문건들이다.
사업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작가 박야일은 “이번 사업을 통해 바깥미술의 모체라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자료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료를 보내는 방법은 우편(143-222 서울시 광진구 중곡2동 35-10 바깥미술연구공간 산방)이나 이메일(yaa111@naver.com)을 통하면 된다. 사업은 11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통일과 일하는 사람들]
* 형식 및 재료 : 벽화 / 수성도료
* 제작년도 : 1986년
* 장 소 : 서울 신촌역 앞 3층 건물
* 참여자 : 김환영, 송진헌, 박기복 등 6명
* 내 용 : 1층 벽면에는 어깨동무하고 있는 아주머니와 청년들을, 2층 벽면에는 백두산 천지와 노동자, 농부, 사무원 등 민중의 모습을 통해 민족통일의 바램을, 3층 벽면에는 민중세상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꽃에 뒤덮힌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 표현하였다. 벽화 내용과 형상이 도전적이고 시위를 연상케 한다 하여 당국에 의해 곧바로 지워졌다.
* 출 처 : 민족미술인협의회
1983년에 세워진 지하1층과 지상 4층으로 구성된 이건물은 철근 콘크리트조 로 각 841.31m, 지층 1265.70m 의 규모이고, 2호선 방배역에서 남부순환로 방향으로 올라오다보면 아파트단지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업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각 사무실마다 주인이 따로 있으며, 관리위원회에서 건물 관리를 하고 있다. 그중 총 책임자이신, 반석교회 목사님께 300 만원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여 건립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노후된 화장실을 입주민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쾌적한 공동공간으로 개선해 보고자 결론 내려졌다. 화장실을 수선하기 위하여 견적서를 내보니 600만원 정도의 엄청많은 돈이 필요하였는데 모두들 세입자라는 이유와 각기 다른 사유로 이만큼의 후원에는 인색하였다. 할수 없이 리폼하는 형식으로 2층의 남녀 화장실만 수선해보기로 하였고, 강남 연합치과(강도욱 원장님), 하나은행 방배남 지점(허필란 지점장님), 삼조쎌텍(장덕철 대표이사님)께서 소정의 후원금을 주셨다.
공사시작은 7월말경에 할것이며 공사마치고 나면 2층 입주민들의 개인 애장품을 모아 액자작업후 벽에 설치하여 함께 느끼는 공동공간으로 만들계획이다.깨끗한 화장실로 만드는데만 그치지않고,우리곁의 미술을 함께 나누는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맺고자 하는데 이 프로젝을 진행하는 의미가 있다
삼백만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곱 작가들의 블로그입니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작가들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주생활공간(주거지역이나 작업실 주변)에서
작품 계획부터 전체 작업 과정에서 느끼는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과 사진들을
올려 줄 계획입니다. 기대하세요^^*
그리고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방배3동 삼원빌딩 2층에 작업실이있다. 그곳 2층에는 치과, 수학학원, 무역 회사, 철학원, 하나은행, 식재료 납품회사, 그리고 203호 ( 내 작업공간 ) 이렇게 제각각 7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는곳이다.
나름 낯가리는 내 성격상 이번 프로젝을 진행하기 위하여 이 모두를 만났고 총 관리인도 만나야했다.....
귀챦은 프로젝이란 생각을 했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요즘 안국동을 어수선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도서관 건립인데 헌법재판소 일이 많아 도서관 건립이 절실한데 헌법재판소 주변 1300여평을 공공시설로 변경 신청을 종로구청에 요청해 주민 여론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 . 런 . 데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훌륭한 보상을 위한 적절한 액션일까요? 아니면 북촌 문화를 위한 남다른 문화심일까요? 일단 언론을 통해 살펴보면 북촌문화 보존이라는 명분을 위해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헌법재판소 이전 운동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음…
몇 일간 살펴보니 주민들이 헌재 주변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인사동에서 반대서명도 받고 있더군요.
음…
안정적인 지역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이슈를 꾸준히 지켜보며 프로젝트 콘텐트로 포함하려 합니다.
● 프로젝트의 배경과 목적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분출하기 시작한 민주화운동은 순수의 아우라에 갇혀있던 미술을 '바깥'으로 불러내 사회와 관계 맺게 하였다. 장르의 시각적 특성을 살려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회현상에 대응한 미술은 그 이후로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좁은 틀이 아닌 보다 넓은 시,공간에서 사회적 참여와 소통을 통해 미술이 나아가야 할 새롭고 공적인 영역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활발했던 80년대 현장미술의 사례 자료들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개인의 장롱이나 서랍, 앨범 등에 흩어져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본 프로젝트는 이러한 80년대 현장미술의 귀중한 자료들을 찾아 모으고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현재 바깥미술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한 지점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 사례 조사의 범위
1. 시간적 범위 - 198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2. 지역적 범위 -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3. 내용적 범위 - 현장미술과 관련된 모든 시각매체의 사진과 기타 기록물
벽화, 걸개그림, 깃발그림, 만장, 영정, 플래카드, 패널
현장전시, 기타
4. 취재 범위 - 개인, 단체, 기타
● 수집 방법
1. 자료 수집에 대한 도움글을 발송한 후 전화를 통해 자료 보유 유무를 확인한 후
2. 가능한 한 직접방문하여 수집하도록 하고 방문이 불가능할 경우 우편과 이메일과 우편을 통해 자료를 받도록 하고
3. 자료에 대한 기록표를 작성하여 사료적 가치를 갖도록 한다.
● 기록물 원본 처리 방안
1. 수집한 기록물의 원본은 스캔, 인화 등으로 이미지를 복사한 후 우편 등을 통해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수집된 자료 원본의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으며, 자료를 기증할 경우와 복사본 또한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으며 산방 홈페이지와 자료집 게재 등 본 프로젝트 이외에 곳에 임의로 사용하지 않는다.
● 자료 활용 방안
1. '가칭 80년대 바깥미술(현장미술) 사례 자료 아카이브 자료집'으로 엮는다.
2. 기획창작공간 산방 홈페이지를 통해 수집 과정과 정리 결과를 공유한다.
안국동을 찾아오려면 지하철 안국역이나 버스로 종로경찰서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그리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지율스님 단식을 위해 어려운 시간을 보낸 종로경찰서, 권력감시운동에 능한 참여연대, 홈페이지가 남다른 걸스카우트 중앙본부 건물, 아름다운 가게 1호인 안국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국동 이야기를 산책하려면 안국역에서 시작해보는 것이 적절할것 같군요.
지난 6월 23일, 중곡동 산방 사무실에서 기획자와 작가 모두 참여하는 work-shop이 열렸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최금수님과 사정이 생긴 김준기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work-shop은 간략하게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고, 대부분 멀리서들 오셨지만 밤 늦게까지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Ⅰ. Project 소개
Ⅱ. Project Rule
ⅰ. Rule 설명
- 장소 및 범위
- 작업 내용 및 방법
- 작업 일정
- 예산의 활용
- 기록
- 역할
- 결과물 활용
Ⅲ. 진행 과정 관련 설명 및 질의응답
Ⅳ. 마무리
> 장소 및 범위 - 거주 또는 주 생활공간을 거점으로 최소단위의 지역 사회 설정(골목, 아파트 한 동 등)
> 문제의 선정 - 각 팀은 설정한 지역사회에서 하나 이상의 문제(해결과제)를 선정
> 작업방법 -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은 미술적 방법
> 역할 - 작업은 작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기획자와 산방은 조력자 역할
> 일정 - 전체 일정 안에서 팀별 자율로 진행 * 전체 일정 : 6월 23일 ~ 9월 15일
> 예산의 활용 - 정해진 예산범위에서 진행하며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적 총량은 휴일을 포함한 한 달을 전제
> 기록 - 기록은 전 과정에 대해 가감 없이 기록하여야 하며 기본적으로 사진기록과 병행
> 결과물 활용 - 자료화하여 사회적으로 공유
안국동은 작은 지역입니다. 작은 지역에 비해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했던 헌법재판소가 있어 여러가지 이슈를 만날수 있는 남다른 공간이며, 아름다운 가게 본부가 있어 아름다운 가게 시스템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며, 풍문 여고생들의 발랄한 이야기가 있는 분식점들이 있으며, 윤보선 고택에서 열리는 행사 이야기, 100년이 가까운 안동교회와 규모가 제법인 선학원에서 들려주는 12시, 6시에 들리는 경쟁하는 종소리와 같은 이야기가 많은 공간입니다.
안국동 지역에서 경험할 수있는 이야기를 통해 프로젝트를 구체화할 것입니다. (사실, 프로그램 있으나 무리해서 내용을 보여드리지 않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보여 드릴려고 합니다.)
■ 참고: 네이버에서 안내하는 안국동입니다.
북쪽으로는 화동(花洞), 동쪽으로는 재동(齋洞), 남쪽으로는 종로1·2가동, 서쪽으로는 송현동(松峴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북부 안국방(安國坊)과 가회방(嘉會坊) 일부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소안동, 홍현(紅峴), 안현(安峴), 재동 등이 안국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안동, 홍현, 안현, 재동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안국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경성부(京城府) 북부출장소 안국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안국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안국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안국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안국동으로 개칭되었다. 법정동인 안국동은 행정동인 삼청동(三淸洞) 관할하에 있다.
잿골, 붉은 잿골 등의 옛마을이 있었다.
공공·종교기관으로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1903년에 설립된 안동교회 등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한성덕어학교가 있었으며, 2001년 현재 덕성여자고등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다. 유적으로는 감고당(感古堂) 터, 안국병원 자리에 한성은행 터 등이 있다. 감고당터는 1881년 172번지와 합쳐져 안동별궁이 되었는데 원래 안동별궁은 1449년(세종 31)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집으로 건립되었으며 영응대군이 죽자 부인이 나라에 기증하였고 성종이 연경궁(延慶宮)으로 명명하여 월산대군에게 하사하였다. 1910년 이후 궁내부 환관들의 거처공간이 되었다가 조선총독부이 재산이 되었고 8·15광복 이후 일부가 풍문여자고등학교 터로 편입되었는데, 현재 남은 흔적은 없다. 문화재로는 안국동 공덕귀가(서울민속자료 27)가 있다.
무언가를 하려하려면 프로젝트 내용을 공지해야 겠지요. 하지만 보도자료스러운 내용 공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첫 인사에서 여러분이 양아치의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적절합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내용을 버전 업하려하니 꾸준한 관심이라면 좋겠습니다.
작가선정
- 본 프로젝트의 목적과 의의에 충분히 공감하는 작가
- 본 프로젝트의 과제에 성실하게 임할 수 있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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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work-shop
- Project 취지 및 개요 설명
- 진행방법 및 기록 요령 전달
- 작품 계획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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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별 작품 계획 수립 및 검토
- 작가의 생활공간 인근에 대한 작품 계획 시안 제출
- 기획팀과 작가의 검토 및 협의를 통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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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별 작업 진행 및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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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 취합
- 작가의 작업 진행 과정 전체에 걸친 Blog 기록
- 완성 작품 촬영
-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
(주민 반응/ 추진위 자체 평가/ 외부 평론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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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 활용
- ‘삼백만원 Project’ Web-site 개설 ‘05 자료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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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 있는 Project 기획과 이를 토대로 하는 발전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