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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등 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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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긁으며 살기_프로파겐다_최금수 January 09, 2006

등 긁으며 살기_프로파겐다

미술이 사회와 만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미술작품들도 몇몇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남에게 철저하게 숨겨진 작품이라면 미완의 작품이거나 이미 눈으로 보여진다는 미술작품 존재의 의미를 포기한 것이기에 더 말할 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미술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느냐 일 것이다. 기획창작공간 산방의 『미술로 등긁기_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고심했던 바도 바로 이 '어떻게'이다. '어떻게'라는 것을 좀더 풀이하자면 미술과 사회가 만나는데 있어 상황과 태도에 관련된 문제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기획창작공간 산방은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미술가의 생존방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환경조형 및 바깥미술의 소통과 유통 그리고 이와 관련한 미술가들의 새로운 창작방식까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기획창작공간 산방의 이번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익히 알고 있었던 것보다 미술과 사회의 통로가 그리 넓지 않았음을 느끼며 다소 당혹해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는 미술 내 사회와 미술 밖 사회의 불일치에서 오는 문제로 어쩌면 미리 노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미술과 사회의 불일치를 얼마만큼 극복할 수 있느냐가 이번 등긁기의 목표였던 까닭이다.
이기일과 함께 한 『미술로 등긁기_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프로파겐다」이다. 기왕의 이기일 작업으로 진행되었던 「프로파겐다」가 있었고 이를 발전시켜 보겠다는 욕심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술로 등긁기_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부과한 과제는 미술이 지역사회에 얼마만큼 소통할 수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더 고심하여 몇 번의 프로젝트 수정과정이 있었다. 원래 프로젝트 초반에 계획되었던 것은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있는 산책로 담장을 이용한 것이었고, 이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 공문을 발송하였다. 국립현충원 측의 답변은 이미 2006년도에 산책로 담장을 한강이 보이게끔 투명하게 바꿀 계획이 잡혀있어 이기일의 프로젝트는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국립현충원 산책로 프로젝트는 전면 백지화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는 사당동 먹자골목 파출소를 열린 화장실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다시 공문을 만들어 방배경찰서 쪽으로 보냈다. 이에 대한 답신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민원에 바빴으며 예술 프로젝트를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벽까지 치안 및 각종 민원 등 현장 실무에 시달리는 경찰들을 보여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 뿐이었다. 결국 파출소에서 교회나 동사무소 등 공공장소로 프로젝트를 옮겨보려고 하였으나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미 구청 등 행정기관에서 열린 화장실 제도를 실행하고 있었으며 이에 예술가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그리 반가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결국 최종 결과물로 나온 「프로파겐다」는 동작구에서 마포구 서교동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장소 또한 공공장소가 아닌 개인 업소인 호프집 '본 하이머'를 선택하게 되었다. 동작구 사당동은 작가 이기일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고 마포구 서교동은 미술을 시작하면서부터 현재까지 작가 이기일이 주로 활동하는 장소로서 오히려 거주지인 사당동보다 더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있었던 까닭에 어렵지 않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로 등을 긁어준다는 것은 이미 어지간한 친숙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술로 등긁기_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의 포스터처럼 혼자 등긁기를 하려면 왠지 궁색하고 어색하다. 사회의 간지러운 곳을 미술로 긁어주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미술로 긁기에 적당한 곳만을 찾아다니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든다. 사회에 미술의 힘을 당당하게 보여준다기보다는 미술 내 사회 중의 일부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나 하는 미련 말이다. 하지만 개별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절실하게 느꼈던 일상의 문제를 거리의 환경에 맞추어 작업을 하였고 이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또한 적지 않았기에 작은 위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심야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길에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노상방뇨까지 생각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번 프로젝트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 최금수·이미지올로기연구소장

Posted by outsideart at 10:51 pm | trackbacks

'미술'로 사회의 부스럼을 없애다-중대신문 November 29, 2005

[중앙대]'미술'로 사회의 부스럼을 없애다 <미술로 등 긁기>‘05 삼백만원 프로젝트’

등이 가렵다. 그것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말이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기 위해선 효자손이나 남의 힘을 빌려야 한다. 사람들의 몸뿐만 아니라 이 사회도 가려워한다. 갖가지 요인으로 진통을 겪는 사회가 가렵지 않을 수 없는 법. 이 사회의 부스럼을 말끔히 제거할 효자손을 자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미술’이다.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활동을 동원해 해결해보자며 미술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지난 6월부터 이번 달 말까지 진행되는 <미술로 등 긁기> ‘05 삼백만원 프로젝트’(http://www.outsideart.net)가 바로 그 사업이다. 미술가를 둘러싼 지역사회에서 인식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미술이란 방법을 내 놓은 것도 그렇지만 그 과정의 전제가 더욱 눈길을 끈다. 단 300만원만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간 것.

프로젝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백만원이 갖는 의미는 의미심장하다. 이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는 미술가의 한 달 인건비 180만원과 진행 경비 120만원이 합해진 금액이다. 인건비를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미술가들의 인건비 책정이 작품제작비 지원에 한정되는 현 관행을 비꼬는 것으로, 이번 기획의 타이틀 ‘삼백만원 프로젝트’ 자체가 <미술로 등 긁기>의 물꼬를 튼 셈이다.

개인 블로그를 통해 모든 작업 과정을 공개하는 <미술로 등 긁기>의 기획자 이경복씨는 “공공미술에 대한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축적되지 않고 개별 사례로 끝나곤 한다. 작가가 지역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공미술을 하기란 쉽지만은 않다”며 공공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함을 설명한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여전히 우리는 공공미술을 학습 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가를 포함한 미술소비자들 역시 이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이 프로젝트가 3년을 목표로 진행 되고 있는 것도 여러 사례를 축적해 미술소비자들이 함께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전한다.

7명의 작가와 기획자가 팀을 이뤄 각기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진행 형식도 이색적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이용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 서비스, 철거예상 지역 주민을 위한 쉼터 디자인, 서교동 정류소를 이용한 작업 등 그들의 작업은 모두 지역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늘 회자되어 오던 문제가 아닌 우리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본 이들만이 끄집어 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다.

이 고민들이 우리네 사는 곳,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기에 접근이 용이할 법도 하지만 이 집단으로서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 처음 국립현충원 외곽담장 페인팅 작업을 위해 뭉쳤던 작가 이기일씨와 기획자 최금수씨(프로파겐더팀)는 프로젝트 진행 불가 통보를 접해야만 했다. ‘국립현충원 외곽담장 투시형 휀스 교체 및 출입문 개방청원’ 계획에 따라 페인트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라는 집단을 위해 첫 시도를 한 것인데 아쉬울 법도 하다.

미술가 이기일씨는 “실질적으로 지역과 부딪쳐 가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지역민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도 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들이 모두 바깥미술의 일환이다”고 말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바깥미술을 향한 발걸음임을 전한다. 열린 화장실로 방향이 정해진 프로파겐더팀은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며 그 간극을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메우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화장실을 열린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진다. 바로 ‘방배3-화장실프로젝트팀’(작가:김연태, 기획자:윤태건)의 작업을 통해서다. 이들은 작업실 건물 화장실에 이용자가 선호하는 애장품 등의 이미지를 설치해 ‘이용자들을 위한’ 화장실 만들기에 나섰다. 낡은 화장실의 개보수와 함께 화사하게 변화된 타일, 세면대 등을 보니 현실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가 동시에 만족된다. 설치된 이미지가 주민들의 애장품으로 완성된 화장실이라니 더욱 애착을 갖게 되리라.

바깥미술, 즉 미술가들이 미술 작업을 하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 넘음으로써 지역사회와 친밀하게 소통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블로그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동안 완성된 작품만을 음미하던 소비자들에게 작업의 모든 과정을 공유하며 능동적인 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점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나를 포함한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과 갖가지 문제로 긁어 부스럼을 가지고 있다. 이 부스럼을 없애기 위해 소수를 볼 줄 아는 섬세한 눈과 그 고민을 공론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이를 위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미술’이라 한들 누가 막을쏘냐.

중앙대신문 김선영 기자 cybersy@cauon.net
2005.11.22 (화)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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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에 대한 단상_정류소_오혜주 November 17, 2005

“쓸모”에 대한 단상

오혜주

이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해주었는데, 그 중에 가장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한 단어는 바로 “쓸모”였다.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년이 되지 않기 위해 그간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혐오하고 합리화하고 변명해 왔는지 생각해보면, 이 말은 매우 무서운 말이다.
그것이 근대화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간형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가열찬 노동으로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상적인 노동자가 아니어서 듣게 되는 꼰대들의 꾸지람이라면, 별로 무서울 것은 없다. 그런 가치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에서 오히려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던져준 “쓸모”라는 화두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현재 이 사회의 가치체계의 변화·재구축의 진행상황과 지점들을 파악하지 않으면 많은 오해와 왜곡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쓸 수 없는 무서운 말이었다.
신자유주의, 전지구화 시대의 “쓸모”란 무엇인가. “쓸모”있다, 없다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에게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쓸모”있는 인간, 특히 “쓸모”있는 예술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논의를 하다보면 나는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 그러나 그 혼란과 분열의 양상에서 마찬가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두 가지 태도를 접하게 된다. 하나는 어떤 윤리를 가졌더라도 문화산업에 포섭되면, 마케팅을 잘하고 돈을 벌면 “쓸모”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당위적이고 선한 의도라면 무조건 “쓸모”있고 이 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찬양하는 태도이다.
전자의 태도는 천재감독의 영화 한편 제작이 자동차 몇백만대의 수출보다 낫다는 식의 계산법과, 우스개 소리로 얘기해서 미술을 ‘애니메이션’과 ‘기초예술’로 나누는 식의 이분법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분법은 당연히 그것을 단순봉합시키는 짓에도 앞장선다.
후자의 태도는 아이들, 노인, 장애인, 저소득 계층, 이주노동자, 해외입양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당위적이고 계몽적인 차원에서의 선전선동, 캠페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태도의 특징은 전략이 없다는 것, 그래서 늘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들은 사회 변화의 액면과 이면의 상호관계성, 역학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야기되는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뭔가 특이하고 남다른 상상력과 창조성으로 마케팅에 목숨걸고 문화산업과 결합하거나, 당위성과 봉사정신으로 환경미화를 통해 열악한 사회 환경과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어떤 “쓸모있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유망한 큐레이터에게 발탁되거나 유수한 국제전에 초청되어 작품의 미적가치를 인정받고 아트씬에서나마 이름을 날리는 일?

그것에 대해 이젠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이다. 물론 게으르기 때문에 생각만 백년이 걸릴 수도 있고...

단적으로 말해 정은영의 <정류소>는 위에서 말한 어느 태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물론 위에서 언급한 태도들이 예술판의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정은영은 이 작업을 통해 “쓸모있다고 통용되어온” 여러 가지 개념과 요소들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해체한다. 해체의 목적은 다르게 생각하기, 그리고 개별주체들의 역사와 경험을 기반으로 재구축하기...로 나는 보인다.
나의 욕심이라면, 작업의 피드백을 좀 더 풍부히 받아볼 수 있는 어떤 장치들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피드백이 풍부하다면 작가가 다음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크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outsideart at 09:37 am | comments (0) | trackbacks

양재천 프로젝트_이병희 November 16, 2005

重京이 良才川에 가서 한 일을 생각해보다
- 重京 良才川에 가다 http://samlim72.egloos.com 프로젝트
양재천에서 지난 여름 무슨 일이 있었나.
2005년 7월 14일 안중경은 평소 자주 산책을 나가던 양재천에, A4 설문지를 들고 나섰다. 한 일주일 정도 설문조사 기간을 갖기로 하였지만, 설문조사는 예상보다 늦어졌다. 8월 초에야 설문조사가 끝나고, 구체적인 일정이 나왔다. 작업명칭과, 기간, 구체적인 작업장소, 일정 등이 나왔고, 블로그 활동이 점차 진행되는 시점이 되었다.
설문조사를 끝내고 난 며칠은 설문결과를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서 작가가 어떻게 해결방법을 찾아낼 지 혹은 제안할 지, 등을 고민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설문 조사 결과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애완견 배설물 문제를 어떻게 풀 것에 대해, 안중경이 택한 것은 애완견 배설물 모양의 모형을 만들고, 양재천에 그것을 갖다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애완견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처리 도구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배설물 모형을 만드는 것은 안중경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으며, 재료특성과 날씨 등의 영향을 애초의 계획했던 것보다, 일정이 약간 늦어졌다. 이후 모형을 양재천에 직접 갖고 나가 설치하기 전에, 안중경은 양재천 영동 1교에서 4교까지 모형 설치 허가를 받기 위하여, 서초구청과 강남구청 치수과에 찾아가, 프로젝트의 전체 취지와 내용, 방식을 설명하였으며, 강남구청 치수과에서는 애완견 배설물 처리 도구들(비닐 봉투와 나무 젓가락)을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안중경은, 중간에 계획을 수정하였다. 처음 계획했던 단지 모형을 배치하고, 그곳에서 처리 도구들을 나눠주는, 캠페인식 계획에서 직접 모형에 시민들과 그림을 그리자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영동 1교에서 4교 사이에서, 안중경은 주변 친구들과 시민들, 아이들과 더불어 애완경 배설물 모형에 일종의 즉흥 낙서들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전체 프로젝트가 끝났고, 끝난 시점은 8월 말이었다. 장마와 폭우, 더위가 지나고 양재천 프로젝트도 마감되었으며, 양재천에서 물감 놀이장을 만들어준 애완견 배설물 모형들은 다시 작가의 손에 의해 수거되었다.

중간평가. 안중경의 300만원 프로젝트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300만원 프로젝트는 몇 가지 규칙만 있고 승자는 없는 게임과도 같다. 프로젝트의 주요 키워드는 일종의 게임의 규칙이 된다. 300만원(한달 인건비와 작품진행경비), 블로그(프로젝트 실시간 공유와 소통), 바깥미술, 최소단위 지역사회, 그리고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라는 화두.
양재천 프로젝트에서 안중경은 이 규칙을 성실하게 지켰다. 규칙에 부합한 프로젝트이자, 약간은 불가능해 보였던 그 규칙을 지키는 과정이자 수행의 과정, 즉 게임의 내부 원칙에서 볼 때, 일단은 성공적인 게임을 치룬 셈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 게임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종의 아슬아슬한 어떤 고비를 맞아 기꺼이 게임의 내부로 동참하게 하는데, 안중경의 네 가지 결정이 있다.
우선 장소. 300만원 프로젝트의 규칙 중 바깥미술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바깥은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이어야 한다는 것, 그에 따라 양재천을 선택한다. 그 곳에서 시민의 생활, 사회적 문제를 해결 혹은 부딪쳐본다. 라는 취지에 맞추어 프로젝트의 출발지점이 설정되었다. 그 다음. 설문조사. 이는 지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역 주민과 공동으로 고민하기 위해 실시한다. 시민들에게 직접 안중경은 양재천의 시민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양재천을 자주 나오는 시민들이 평소 생각하고 있는 양재천의 좋은 점과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다. 결과로 100여명의 시민들을 애완견 배설물 처리 문제에 대해서 상당 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여기까지는 도입부다. 이제부터 안중경은 본격적인 문제 해결 혹은 문제와 마주치는 단계에 접어든다. 그가 이 단계에 접어들어 마무리까지 애완견 배설물 모형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과 양재천에서 직접 시민들과 그 모형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정한 두 가지는 사실 이 프로젝트에서 결정타가 되는 것이다. 지역 사회의 고민이나 골칫거리를 알게 되고 미술가가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마주보게 하는 결말부분에까지 이르면서 프로젝트는 마감이 된다.
여기서 누락된 것은 300만원의 향방이다. 물론 300만원은 재료값, 일정기간 동안 안중경 개인의 인건비와 주변 도와준 사람들 인건비, 교통비, 식비 등으로 모두 지출되었다. 그렇지만, 계획보다 늦어지는 일정과, 예상보다 많이 들게 되는 인건비, 이에 따라 식비등 기타 부대비용도 더 들게 된다. 따라서, 애초 안중경의 계획과 일정을 초과한 만큼 300만원의 예산도 초과 지출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 점은 프로젝트의 규칙에서 어긋난 지점일 것이다. 그렇다할 지라도, 안중경은 다른 규칙을 성실하게 지킨 덕에 얼마간의 성과를 얻게 된다. 그것은 마지막에 처음 계획에서 조금 변경된, 시민과 같이 모형에 그림을 그리는 이벤트를 하면서 더욱 가시화된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시민의 의지에 의해, 시민 스스로를 위하여, 시민 목소리로, 그리고 시민과 더불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안중경은 여기서 일종의 보조자 역할을 한 셈이다. 결정적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한(안중경은 자신의 의견보다 설문의 결과를 따르려고 하였다) 문제를 어떻게 가시화시키느냐의 지점에서, 안중경은 과도한 상징과 은유의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 결론인 애완견 배설물 모형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또한 단지 시민에게 캠페인 식으로 ‘애완견 배설물 문제를 같이 생각해봅시다.’ 혹은 ‘자기 애완견 배설물을 스스로 치웁시다.’ 등의 권유나 주장이 섞인 발언이나 행위를 취했다면, 안중경은 애초의 문제설정과 해법간의 모순을 겪게 되었을 텐데, 안중경의 해법은 시민 스스로 풀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프로젝트는 시민의 문제설정, 시민 스스로 해법을 생각해보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술과 미술가가 개입함. 이라는 과정으로 마감된 것이다.

안중경의 300만원 프로젝트의 잔여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만 프로젝트의 규칙을 바깥에서 보면서 떠오르는 의문들이나 생각들을 적어보자. 바깥 미술이라는 용어를 여기서 한번 시선의 문제로 가져가보는 것이다.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라는 기획팀의 화두는 어찌 보면 매우 윤리적인 모토이다. 어느 사회에서건 그(그녀)가 미술가이건, 음악가이건, 운동선수이건, 백수이건 간에 그의 사회적 쓸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단지 그(그녀)를 어떤 맥락에서 호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그녀)그 자신이 어떤 맥락, 어떤 시선 속에서 응시의 한 쪽 지점을 차지하고 있느냐의 문제를 따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기획팀의 윤리적 모토와 안중경의 선택을 두고, 도대체, 미술가라고 불리어지는 자들이 어떤 주체인지, 혹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 맥락은 왜 그(그녀)를 주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안중경의 선택 중, 장소 선택. 물론, 규칙이 올바른 규칙이건 아니건 간에, 해당 프로젝트만 놓고 봤을 때에도, 양재천 부근에서 살게 된지 몇 개월째인 시민 안중경에게 양재천이 자신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어떤 의문점들을 주는 곳이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즉, 안중경 자신의 목소리는 무엇이었는가이다. 혹은 양재천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지역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여기서 미술가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지적해내는 역할이 아니라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관찰자, 대변인, 해결사, 연결인? 등등. 물론 이러한 장소선택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안중경이 살게 된 양재천. 그 이상의 의미는 어떻게 보면, 프로젝트 수행과정 속에서 구체화되거나, 장소 선정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설문조사. 여기서 안중경은 스스로의 문제설정이 아닌 일단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들어주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오히려 위에서의 질문 중, 안중경 자신의 목소리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있다. 안중경이 스스로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안중경의 목소리는 시민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더 잘 듣게 해주거나, 그 소리들을 섞어준다거나, 서로 들리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프로젝트 내내 안중경은 직접적인 문제에는 최소한의 개입을 하였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시민은 여기서 안중경에게 무엇을 부탁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미술가는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을 모종의 작업 대상의 지점에 놓고, 애완견 배설물이라는 매개로써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이야기해나갈까를 고민하고, 주민들의 문제 설정을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게 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에 서게 된다.
주민들의 문제 설정. 즉, 설문조사에서 특이한 점이 바로 스스로의 문제 설정이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설문조사가 그렇듯이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만인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이번에는 안중경의 주관적인 목소리를 가능한 한 배재하고 시민의 의향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큰 취지였기 때문에 설문조사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단, 주민들의 반응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주민들은 상대방이 젊은 작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양재천을 관리하는 서초구청과 강남구청 치수과에 요구하는 목소리보다는 자신들 스스로에게 요청하는 내용의 응답을 하였다. 즉,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대상이나 요구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은 혼잣말을 하거나 푸념을 하듯이 안중경이 누구이건 간에, 그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단지 안중경은 여기서 약간의 과장이지만 레코더의 역할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왜 미술작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을까. 작가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가 평소에 이웃들과, 산책하다 만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평소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일까. 물론 설문의 결과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골치 덩어리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안중경에게 털어 놓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즉, 애완견 배설물은 여기서 어떤 단서이지, 궁극적인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안중경 또한 설문을 하면서 나눈 대화 속에서는 애완견 배설물에 관한 생각이나 의견 또한 단순하지만 않았고, 생각보다 복잡한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것 중의 하나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안중경은 일종의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고, 문제를 풀 수 없지만 무엇인가 제안 혹은 이야기를 던져야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시민들은 이제 안중경에게 문제의 단초를 쥐어주고, 자신들은 안중경으로 하여금 해답을 해주길 바라는 위치에 서게 된다.
안중경이 본격적인 문제 풀이 단계에 접어들면서, 안중경은 고민에 빠졌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한 미술가의 쓸모 혹은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존재론적인 문제까지 겹쳐있는 며칠이었다. 미술가와 애완견 배설물과 시민. 이 관계항의 설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이런 삼각관계는 은유적으로야 재미있는 관계가 되겠지만, 현실을 꾀어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만만한 관계항이 아닌 것이다.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캠페인을 한다. 혹은 애완견 배설물을 사랑하자고 해버린다. 등등 매우 즉각적인 반응들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문제의 해결은 안중경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설정한 자 자체에게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일단 안중경이 만들기로 한 것은, 애완견 배설물 모형 4덩이. 금액과 시간을 고려해 봤을 때 안중경의 결정은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결과물과 과정을 공개할 수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애완견 배설물 모형이 여기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일종의 지역 사회 문제라든가, 지역사회의 특성의 하나의 단초로서 제안된 애완견들의 배설물이 크게 모형화 되어 눈앞에 전시된다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물론 애완견 배설물의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은 당장은 자신의 문제 지적이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통쾌해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은, 단지 모형이라는 것으로써 또 사람들을 회유하려든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간에, 두 의견 모두 사실은 실질적으로는 그리 쓸모 있는 의견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기존의 생각을 확인하는 데만 그치는 방식으로, 아무런 생각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경우, 애완견 배설물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건 거론했던 사람들보다는, 애완견 배설물 문제를 떠올려 보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고, 한편으로는 애완견 배설물 문제에 대한 즉각적 해결방식(치우자, 데리고 다니지 말자, 동물도 존재다. 등의)이 아닌, 방식, 즉 해결이 아닌 방식 혹은 해결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대한 의문 등이 들 수 있다. 안중경 또한 즉각적인 해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들로, 시민들에게 일종의 문제의 향유를 권하는 제스쳐만 취한다. 애완견 배설물 모형, 아이스크림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 위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당시는 더운 여름이었고, 한 낮이라 의욕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의아함과 호기심 등으로 배설물 모형에 페인팅을 하고 있는 순간을 목격하거나 동참하였다. 이런 행사가 과연 배설물과 주민의 향유의 지점인지, 단순한 놀이나 불평의 확인하는 지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안중경이 애초의 캠페인 식의 계획에서 일정을 변화시킨 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 그 방식에 대한 윤리적 결정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술가는 사회에 직접 개입해 들어가진 않지만, 사회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하고, 그것을 생각하게 하고, 또한 그 문제를 향유토록 한다는 취지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물론 이것이 안중경의 양재천 프로젝트를 바깥 미술로 바라본 올바른 결론일지, 과도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양재천 프로젝트에서 들춰본, 애완견 배설물 문제가 과연 무엇의 단초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 문제의 핵심은 비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중경이 마치 고민을 들어주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데까지 이끌어주는 분석가의 위치와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는 미술가라고 단정하기엔 역시 과도함이 있다.
우선 이 프로젝트 자체에 환영성이 너무도 농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칙을 성실하게 잘 지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 프로젝트에 환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영적 프로젝트의 수행과 그 결과 속에서, 안중경의 300만원 프로젝트가 진정으로 지시하는 곳, 혹은 미술가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우리 스스로의 해결방법을 찾을 단서들을 캐내어야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미술가와 우리가 마주보게 되는 것이며,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라는 일종의 윤리적 화두는 어떤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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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통해 일상 속을 침투해가는 작가, 양아치 October 31, 2005

[출처] 문화예술교육 허브 사이트 아르떼 웹진 '땡땡'

미디어를 통해 일상 속으로 침투해가는 작가, 양아치 --인터뷰_박유신 / 사진_박해욱

사실, 미디어아트 작가의 웹 사이트를 뒤지는 것이 매번 흥미 있는 작업은 아니다. 같은 액자 속에 들었다고 해서 그림들이 다 같은 그림이 아니듯이, 미디어아트 작가들도 당연히 자기 나름대로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보고 끄덕끄덕하고 다음 작품으로 다음 작품으로 출구를 향해 걸어나가는 것과 무심한 ‘클릭클릭’을 반복하며 작가들의 다소 기이한 이미지, 혹은 사색의 흔적이 엿보이는 페이지를 부유하는 행위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아무리 작가들이 ‘인터랙티브 아트’를 표방한다고 해도 많은 작품들은 관객인 우리들에게 여전히 객체이며 그 중에서도 아주 낯선 타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미디어아트 작가인 양아치(본명 조성진)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의 웹 사이트인http://yangachi.org 를 방문했을 때에도, 나는 비슷한 클릭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하, 이런 작품을 하는 사람이군… 클릭클릭… 이런 절차와 함께 그의 작품을 섭렵하기 위한 클릭을 반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프린터에서 이런 것이 튀어나왔다.

meeting1_1.jpg meeting1_2.jpg
“자살하지 마세요”

물론 프린트를 예고하는 메시지를 클릭하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일상생활 속에 작가의 메시지가, 즉 예술이 침투해 들어왔을 때의 묘하고 즉물적인 느낌은 마치 영화 <링>에서 귀신이 모니터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의 황당함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보니, 네모난 모니터 안의 예술과 프린트된 예술은 얼마나 다른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미디어들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는 과연 자각하고 있는가?


안국동에서 생긴 일
홈페이지를 통해서 본 양아치의 작업들은 게릴라처럼 미디어와 실제 세계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최근의 작업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핸드폰 방송국 (http://yangachi.org/300)>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미술로 등 긁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이 작업에서, 시각 미술적인 작업을 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담당한 안국동에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안국동을 위해 마련한 <핸드폰 방송국>에는 일반적인 미술 또는 미디어 아트를 기대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는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하긴 누가 미디어 아트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던가!). 기자라고 생각되는 남녀의 사진 밑에 있는 재생 버튼을 눌러보면,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지만, 녹음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내용들이 통화 연결음부터 시작해서, 일상적인 인사말에서부터 부재중 신호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하게 녹음되어 있다.

‘삑삑삑 삑삐삐삑 … 따르르르르륵… 따르르르르륵… 따르르르르륵.. 따르르…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아까 통화한 사람인데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네. 저 지금 주위가 시끄러운데,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지금 풍문여고 몇 학년이세요?
‘2학년이요.’
‘제가요. 전에 풍문여고 담벼락에서요, 어떤 아줌마랑 학생들이랑 검은 봉지를 담벼락으로 주고 받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게 뭔가요?’
‘아, 그게요. 저희 학교에 매점이 없어서요, 학생들이 밖으로 못 나가니까요, 바로 앞에 있는 슈퍼 아줌마들이랑 물건을 주고받고 하는 거예요. 불법으로…’

어떻게 보면 소소하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복잡한 사건인 듯한 이 통화내용은 현재 양아치의 <핸드폰 방송국>을 통해 방송되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도대체 <핸드폰 방송국>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마침 작가 양아치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핸드폰 방송국>을 주제로 그룹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직접 만나보니 양아치라는 도발적인 닉네임과는 달리 다소 수줍고 겸손한 말투를 지닌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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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여고 매점 이야기는 <안국동 프로젝트> 진행 중 발견하게 된 것인가요?
아이들이 ‘아줌마 뭐 주세요.’ 라고 말하고 돈을 던지면 아줌마가 검은 비닐 안에 물건을 담아서 던져요. 알고 보니 2년 전에 무슨 연유에서 풍문여고에 매점이 없어졌고, 아이들이 과자를 사먹을 수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사 먹고 있었는데 제가 본 것이 바로 그 대안이었던 거예요. 그것을 ‘담치기’ 라고 하더군요. 안국동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던 거죠. 이것을 문제 삼으려면 삼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또 그냥 추억거리로 넘길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여러 가지를 알게 되더군요. 아이들이 담치기를 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리면 벌점이 매겨지고, 벌점이 매겨지면 대학 가는 데 지장이 생겨요. 그러니까 여기서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생기는 거죠. 먹는 것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들을 전화통화를 해서 컨텐츠로 만들면 상당히 여러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양아치에게는 풍문여고 학생들이 매점을 돌려받는가, 돌려받지 못하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매점이 없다’는 단순한 문제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일들이 더 흥미롭다고 했다.

이 작품에선 문제해결 보다는 전화통화 녹음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에요. 다들 ‘이야기 부재시대다’ 라고 얘기들을 하는데, 이야기가 사라진 게 아니라 핸드폰 환경으로 이야기가 이동한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경험했지요. 미디어 아트 역사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미디어 작품들을 죽 살펴보면 과거의 회화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이것들은 끌어내지 못했어요. 번쩍번쩍하고 요란하고 난리가 났는데, 그것이 우리한테 뭘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죠. 저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디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면 결국 ‘이야기’로 귀결되더라고요. 스토리텔링. 이것을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생각해보다 전화 통화 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갖고도 오랫동안 전화통화를 하잖아요. 저는 거기에 매력을 느꼈고 이야기가 핸드폰을 통해 전개되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래서 핸드폰을 통해서 콘텐츠를 끌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었죠. 녹음도 어렵지 않아요. 핸드폰 기능에 다 들어있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재밌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미디어 중에서 특별히 핸드폰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일상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이군요.
색다른 경험이 아니잖아요. 들어보면 평소에 하던 건데 그것이 콘텐츠로 생산되니까 굉장히 낮설게 느껴지죠. 한번 녹음해 보세요. 자기 일상의 대화가 얼마나 재미있었는가를 알 수 있어요. <핸드폰 방송국>을 들어보면 재미있지 않던가요?

그의 핸드폰 방송국의 내용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카드 해지를 요구하자 돌연 당황하는 전화교환원의 목소리라든가,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메시지 녹음으로 연결되는 등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의 통화들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그는 자신의 예술 소재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확실히 재미있고 친숙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처럼 이들은 예술적 오브제로 작용한다.

미디어, 친숙하고도 낯선 경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 예전엔 주로 웹 아트 작업을 하셨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진을 다른 구도로 훑어보는 작업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작업 같은 경우는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우리가 소위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습되는 경향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숨겨진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거예요. 이미 고착화된 이미지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거든요. <영어 학습자 네트워크>라는 작품 보셨어요? 박정희와 케네디가 마주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작품이요. 제가 보기엔 케네디는 선생같고, 박정희는 영어 배우는 학생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미지만으로 상상을 해서 혹시 그런 관계이진 않을까 가정을 해보는 거죠. 저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같은 문제도 보존이나 철거 이런 걸 떠나서 그냥 문화적인 흔적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그런 이미지들을 작가들이 한 번 씻어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정치적인 사건이나 무거운 이미지들을 해체하는 유희적인 작업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뭐, 해체는 아니고 짐을 덜어내고 비워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치적으로는 회색분자인 것 같지만요. 하하.

그런데 저는 작품들을 쭉 보다가 ‘자살하지마세요’ 인쇄물이 나왔을 때 정말 놀랐는데요, 미디어가 갑자기 일상 생활 속에 침투한 것 같은 생경하고 묘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작품을 프린트해서 보게 한다는 것도 신선했고요.
사실 웹 작업을 하다 보니까 제 작품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았어요. 제가 성의를 들여서 만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했는데 보는 사람은 무성의하죠. 쓱~ 하고 그냥 보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내 콘텐츠를 보려면 프린트해서 봐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 라는 심정이요.
한번은 ‘자살하지 마세요’ ‘스토킹하지 마세요’ 라는 프린트를 실제로 광화문 지하도에 전시를 했었는데요. 그 글들을 외벽에 걸어놓았더니 사람들이 캠페인인줄 알더라고요.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외국인이 보면 창피하다 등의 반응들이 나왔어요. 작품이라고 던져놓았더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 소화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냥 처음엔 자살과 스토킹이 많다고 해서 좀 자제를 하고 살자, 그 정도만 얘기하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데, 그런 반응이 나오니 재밌었어요.
프린트 작업은 아마 계속될 거예요. 저는 이미지를 무료로 제공하고 책 표지로 쓴다던가, 액자를 한다던가, 그냥 버린다던가 하는 건 사용자 마음대로겠죠. 그렇게 미술을 공유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보신 작업들이 좀 어지러웠죠? 제가 8년 정도 작업을 해오다 보니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게 어떻게 미술이 될까 생각하실 텐데요, 오히려 상상하는 그대로가 미술의 형태가 되고 미술로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현실과 상상, 간극 메우기
그의 이전 작품들은 무수히 많아서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그는 작품이 너무 많아서 어지럽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감상자로서는 치열한 작가의 족적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인터넷에 개방되어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함을 느꼈다. 무심한 듯, 우연의 산물인 듯 말하지만 상당히 치열한 고민을 하는 작가라는 것을 언뜻 느낄 수가 있었다. 가령 그가 최근 작업중인 <안국동 프로젝트>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고민이 적혀 있다. 혹시 그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 생각해봐야 할 몇 가지.
1. 주민 참여에 대한 생각 : 주민이 원하는 미술 프로젝트와 작가가 원하는 프로젝트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이런 간극이 프로젝트와 관계 가능한가?
2. 지역 공간 참여에 대한 생각 : 지역 공간은 지역의 프로슈머로서 자리하지만 직접적인 주민과의 교류는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이런 간극이 프로젝트와 관계 가능한가?

요즈음 <안국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신데, 홈페이지를 보니 작가로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던데요. 그 내용을 보면 지역사회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분들에게도 거의 공통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나요?
네. 고민이 있었어요. 일단 주민들이 원하는 미술은 일반적인 거예요. 그림을 그린다던가, 전시를 한다던가 하는. 저희가 원하는 건 다른 형태인데 그걸 할 수 없는 형편이에요. 주민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가 없었어요. 벽화, 공공미술 이런 것들을 원하는데 저는 그것들을 하기 싫은 거죠. 그게 과연 내가 할 것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프로젝트 진행에서 그것이 어려운 부분으로 작용하던가요?
그 간극 자체가 어려웠어요.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앞으로 주민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제가 제안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요. 그건 제가 헤쳐 나가야 할 영역인 것 같아요. 풍문여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예술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편견이 생겨요. 미술이란 이런 거다 하는 것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하고 작업을 했어요. 사실은 안국동 주민들이 뭔가 생산해주기를 바랬는데…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있어서 설명할 시간이 더 필요하죠.

그것은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겠네요.
네. 그리고 이번 <핸드폰 방송국> 같은 경우는 그 일환이기도 해요. 핸드폰 방송을 하고 녹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근데 그걸 미술이라고 생각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거죠.

그런 문제들이 일상생활로 침투하려는 미디어 작가로서 스스로 느끼는 한계와 관련이 있나요?
그렇죠. 주민들과 저는 미술에 대한 입장이 틀리니까요. 그런 지점에서 앞으로 공유를 한다면 더 결속이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공유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서 제 프로젝트는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어야겠죠. 저한테 이 작업들은 아직 의미를 추적해가는 과정이에요. 생각하는 과정이고요. 매체 자체로서는 웹에서 핸드폰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이젠, 당신도 예술가!
마지막으로 예술가로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제안이 있으신가요?
사실은 너무 많은데요, 짧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렵네요. 우선 생각나는 건, 꾸준한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항상 트렌드에 민감해서 다양한 관심은 있는데, 그게 얼마 못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다양한 것도 좋지만, 더 깊이 있고 뿌리가 튼튼한 그런 게 있었으면 해요.
‘누구나 예술가다’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하죠. 그런데 본인들이 예술가라면 일상생활에서 뭔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주면 예술가가 아니죠. 예술이 복잡한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그런 건 아니에요. 어떤 것 하나라도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재미나게 놀 수가 있을 텐데 우린 아직 놀이 기술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노래방 가고 가족끼리 모여서 가까운 데 놀러 가고 하는 일방적인 접근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만들어가는 놀이방식에 대해 제안하고 싶어요. 핸드폰 방송국처럼요. 아주 쉽잖아요. 본인들이 예술가라는 걸 잊지 말고 꼭 보여주세요. (하하)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예술이라고 명명했을 때 이미 예술에 대한 정의는 무한히 확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양아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작가로서, 일반인들의 삶 속에 파고들려는 작가로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마르셀 뒤샹 이후 100년이 흐르도록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의 예술에 대한 개념이 전혀 가까워 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이에는 대체 얼마나 넓은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극복하고 공유점을 만드는 것은 단지 작가 양아치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그의 어떤 작품은 지극히 미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듯 했지만 사실은 전화통화 속에 살아있었던 무수히 많은 이야기에 서명을 하여 예술 작품으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그의 <핸드폰 방송국>은 미디어 사회에서 예술이 갈 길 하나를 제시한 듯 보인다. 미디어 작가 양아치의 핸드폰 방송국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자기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든 그의 방송국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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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을 위한 미술의 겸손 - 뚝방팀 October 15, 2005

뚝방지역의 쉼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한지 석달여가 되어서야 비로소 프로젝트가 끝났다. 작가 중심으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애초에 기획자의 역할이 프로젝트에 대한 컨설턴트 혹은 서포터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가를 옆에서 성원해주는 역할 외에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포지션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우면동 뚝방지역이 내가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피부로 체험하는 지역이 아니라 내겐 쉽게 친근해지기 어려운 무척 낯선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문제를 미술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개념에 대해 내 나름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어쩌면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 시점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 자체도 실제 뚝방의 지역민들이 경험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에 사실 기획자로서 하나의 기획에 대해 가져야할 진정성을 따지자면, 이 프로젝트에서 기획자로서의 내 역할은 여러 가지로 미진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기획자가 한 팀이 되어 ‘뚝방’이라는 팀 이름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 내 나름대로 참여하기 위한 방식으로 했던 여러 가지 잡무들, 즉 노가다하는 작가 도와주기(실제로 도와주는 척하기 외에 큰 역할은 못했다), 음료수 사다 나르기, 작업과정 사진 찍기, 블로그에 자료 올리기 등의 일들 덕에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뚝방 지역에 많이 친숙해질 수 있었고 그곳에 당면한 문제점과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실상 지역의 문제에 대하여 다른 어떤 도구가 아닌, ‘미술’로 등을 긁으라는 임무는 애초에는 그렇게 어려운 과제로 체감되지 않았었다. 해외여행 중에 보았던 여러 가지 공공작업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면서 미술을 통한 사회적 소통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현실화시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에 까지 머리 속 진도가 나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은 언제나 자명한 일이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대체로 어떤 사이트를 정해서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한 벽화를 그리거나 낡은 공공시설에 색칠을 하거나 하면 되겠지라는 일종의 환경미화 차원의 피상적 생각만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맨 처음 부딪힌 벽은 이 프로젝트의 임무 중 하나였던 ‘지역성’의 문제였다. 작가가 거주하거나 자주 생활하는 특정 지역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포인트가 ‘지역의 문제를 미술로 해결해본다’는 것이었기에 지역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에서 출발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술을 통해 어떤 대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첫 번 째로 요구되는 것이 대상에 대한 이해와 겸손한 태도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뚝방 지역에 대해서 통계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문제점을 포착하는 것은 내가 그 지역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뚝방 지역에 대한 나의 시선은 그 지역민으로서가 아니라 외부인으로서였고, ‘아마도 그러리라 짐작되는’ 추론들을 통해서만 그분들의 어려움을 예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뚝방 지역에 작업실을 가지고 드나들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이 지역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시선 역시도 십수년간 그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몸으로 투쟁해온 토착민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 팀이 겪었던 어려움들은 근본적으로는 아마도 이러한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그러한 한계들을 체험하고, 애초의 아이디어를 그 지역에 걸맞는 방식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 자신에게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실제로 뚝방 지역에서 어떻게 ‘등긁기’를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뚝방 지역에 쉼터를 만들어주고 싶은 소박한 뜻이 애초에 ‘마을회관’ 건립이라는, 언뜻 듣기에 너무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뚝방 지역과 같은 경우 생존권의 문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절박한 곳이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입장을 설득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
사실 미술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들은 ‘미술계’라는 특수한 세계를 벗어난 공간 어디에나 산재해있다. 미술활동을 ‘공상하는 일’, ‘고급 취미활동’으로 생각하면서 작업실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부르주아적인 소일거리로 보는 시선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미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할 일 없어서 빈둥거리는 그룹으로 보여지는 것인데, 그것은 한편으로 미술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소통되지 못한 채 미술계라는 특정 집단 안에서만 회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지역에 미술행위를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한 마디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짓거리’로 오해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뚝방 지역과 같이 생존권의 문제가 좀 더 시급한 지역을 위한 미술이라면, 미술이 삶과 좀 더 끈끈하게 연결되는 형태로 조직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뚝방 지역에서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지역민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고려하는 데서 출발해야만 했다. 뚝방지역은 집을 짓도록 허가되어 있지 않은 땅에 수십년 살아온 주민들이 만들어온 터전이다. 철거 예상 지역에 살고 있다는 조건 자체가 실상 언제나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절박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생존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휴식’이라던가 ‘놀이’에 관련된 시설들은 전무하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이 지역 어른들이 양재천이 내려다보이는 뚝방 길에 선 채로 담배를 피우거나 얘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눌만한 마땅한 휴식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잦은 물난리나 구청의 감사 등의 문제로 인해서 마을 주민들끼리의 상호협조가 필요한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서너 명이 모여 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할 공적 장소가 전무한 실정이었기에 마을회관의 필요성을 지역의 여러 어른들께서 이미 느끼고 계셨던 터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마을회관의 형식을 빌어서 지역민들이 쉴 수 있는 쉼터의 공간을 만들고자 계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회관 건립을 위해 간이식 구조를 세우고 그 안에 벽화 등의 형식으로 미적인 요소를 첨가하고자 하는 계획은 뚝방 지역 반장님의 적극적인 협조로 처음에는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 공공의 목적으로 무언가를 설치한다거나 그린다는 행위가 작가가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작업을 완성시키는 철저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생산과 공공적인 영역에서 그것을 실행시키는 것은 상상력을 외계로 투사시킨다는 입장에서는 결국 같은 맥락이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 거쳐야할 과정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크리스토(J. Christo)가 하나의 공공 프로젝트를 위해서 수년간 공적인 서류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서 주정부 혹은 시의 허락을 얻어내고, 스폰서를 섭외하고, 지역민들을 설득하고, 지역의 인력을 고용하는 일련의 ‘사회적 간섭’ 과정을 거친다는 것, 그 전체적 프로세스 자체가 크리스토 작업의 일부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실질적으로 그 과정의 첫 단계 조차도 우리에게는 낯설고 생경하고 불편한 일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구청의 허가문제였다. 무허가 지역 내에 어떠한 건축물 형태를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구청의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구청으로부터 무허가 건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수시로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 지역민들은 약자의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에, 구청과의 관계나 땅에 대한 권리에 관해 문제의 소지를 피하고자 할 수 밖에 없고 구청의 움직임에 대해 언제나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부 주민들은 뚝방 지역에 무언가 새로운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고, 구청에서도 허가가 나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지나갔다. 결국 시공일까지 잡힌 상태에서 마을회관 건립은 백지화되었고,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뚝방 지역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한 일들을 포기하고, 가능한 범주 안에서 쉼터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실 이 과정 중에서 공공 프로젝트의 프로세스가 가지는 어려움을 가장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름대로 얻은 결실이 있다면, 공공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 자체를 작업 실현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뚝방 지역은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가 응집되어 있는 곳이었고, 이곳에 미술적인 행위를 시도하면서 우리가 경험한 과정들 자체가 공공미술 작업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교회 앞의 공터를 이용하여 뚝방 지역 주민을 위한 작은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건물의 형태를 피하기 위해서 작가에 의해 도출된 아이디어였는데, 용도의 면에서 마을회관 만큼의 실용성을 띠지는 못하지만,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초점이었던 ‘쉼’이라는 개념에는 보다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되었다. 블로그에 공개된 과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수월치는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 간의 갈등이 불씨가 되어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고, 수차례 폭우로 인해 며칠씩 지연되는 일이 허다했다. 프로젝트의 성격을 바꾸었음에도 여전히 구청의 감사를 우려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엔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없이 쉼터가 완성되었다. 이 공원은 무언가 주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구성되었는데, 뚝방 지역에서 유일하게 알록달록 색깔이 입혀진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이상기온으로 찌는 듯 더웠던 9월 내내 철근 세우기, 지붕 설치, 돌 나르기, 돌 깔기 등등 무수한 노가다를 직접 했던 작가의 작업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우리가 아트 팀인지 공사 팀인지 헷갈리던 순간도 있었지만, 작업의 마지막 과정에서 쉼터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가의 채색과 드로잉 작업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의 위치가 노가다에서 아티스트로 변모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쉼터가 드디어 뚝방 주민들을 위한 하나의 미술작업으로서 완성된 것이다. 완성된 작은 공원은 그 자체로는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색 그물망들을 덮어놓은 뚝방 지역의 어두운 지붕들 사이에서 마치 동화 속 장면들처럼 화사하게 보인다. 공원은 널찍한 평상 세 개와 야외용 테이블 의자, 햇빛이 반쯤 투과되는 선라이트 지붕, 리폼한 교회 의자, 작은 화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을 느슨하게 만드는 유원지의 여유, 저렴한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가벼움, 볕 잘드는 공간의 양지바름, 작가의 작업이 애초에 가지고 있는 특유의 펑키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완성된 공간이다.

공원의 한 가운데에는 교회에서 쓰다버린 의자에 천을 씌워 리폼하고 드로잉한, 일명 ‘희망의자’ 작업이 야광색으로 빛나고 있다. 날씨 화창한 오후에 이 의자에 앉아서 반투명 지붕위로 투과되는 색색의 드로잉과 그 너머로 무한히 펼쳐진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뚝방 지역 주민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단 일초만이라도, 희망의자에 앉아서 이와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아마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뚝방 지역에 희망의 느낌을 불어넣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그 순간만큼은 구청의 통제나 주민간의 갈등이나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과정의 지난함이나 어려움 모두를 통과하여 누군가에게 전달된 것 일테니 말이다.
이런 식의 소통이 정말로 정말로 가능하다면, 공공미술을 위한 노력은 우리 팀이 겪었던 행정적 미숙함, 일의 순서에 대한 무지, 지역의 문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 지역민과의 소통 부족 등 수많은 미진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석달 이상 진정 괴롭혔던 ‘미술로 등 긁기’라는 임무를 또 한 번 시도해볼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 쉼터가 또다시 구청의 압력으로 철거 위기에 놓여지게 될지라도 말이다.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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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소에 놓여진 그 책은..... October 05, 2005

정류소에 놓여진 그 책은...
정은영 정停류流소所
(삼백만원프로젝트 - 미술로 등긁기)

글 김영애 yaikim@yahoo.co.kr

1.

홍대앞 지하철 5번 출구. 홍대 정문으로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출구이자,
사무실 뿐만 아니라 옷집, 술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바로 연결되는
매시간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곳.
바로 그 앞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고,
그 정류장에 언제부터인가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이는 관심있게 그 책을 뒤적여보기도 하지만,
관심있게 훔쳐볼 뿐 누구의 책인지 몰라 그저 두고 감히 만져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의 책일까요?


2.
사실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누구나 와서 가져갈 수 있는, 또한 내려놓을 수 있는.

작가가 말합니다.
이 책은 삼백만원 프로젝트 중의 일부로, 정은영 작가의 <정류소 停流所> 입니다.
기다림의 장소인 정류소(停留所)를, 움직임의 공간인 정류소(停流所)로 바꾸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흐르고 흐르는 움직이는 책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3.
운명적으로 흘러다니는 책.
예전에 읽은 밑줄긋는 남자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최근에 본 영화 세렌디피티를 생각나게도 합니다.

<밑줄긋는 남자> 속에서, 주인공 여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밑줄과 책 끝에 남겨진 다음 책에 대한 힌트를 추적하며, 운명의 그 남자를 만날 것을 꿈꾸고,

<세렌디피티>에서는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 끌리지만, 이미 각자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만약 그들이 정말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면서,
헌책 속에 전화번호를 남긴채 헤어집니다.
그 책이 다시 그들의 손에 들어오게 될 때,
서로 연락해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간직한 채.

저도 <밑줄긋는 남자>에서처럼,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이 쳐져 있을 때에는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고 읽곤 했습니다. 공공기물에 낙서를 하다니! 하는 생각보다는,
밑줄그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먼저 생겨나고,
또한 지인으로부터 책을 빌려서 읽을 때, 그가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보면,
왜 이 곳에 밑줄을 그었을까 다시 한 번 그를 생각하게 되지요.
제가 이미 밑줄을 많이 그어놓은 책을 누군가가 빌려달라고 했을때,
그어놓은 밑줄 만으로도 내 마음을 들킬까봐 조금 신경이 쓰입니다.

파리에서는 제 친구가 다음과 같은 커뮤니티를 소개해주기도 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커뮤니티모임인데,
자신이 다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보기 위해서,
시내의 어느 은밀한 곳에 책을 숨겨두고 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곳에 책을 숨겨 놓았다는 것을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 공개하면,
누군가가 가서 그 책을 가져와서 읽고, 또 다른 곳에 숨겨놓는.
언젠가는 그들끼리 서로 만날수도 있겠죠.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그리고 책.
그렇게 연결되는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라는 끈.

홍대앞 버스 정류소에서 다음과 같은 책을 보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그 곳으로 주저없이 데려가세요.

정은영 작가의 작업 블로그 http://murmuring.egloos.com
삼백만원 프로젝트 http://www.outsideart.net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오늘 올라온 글입니다. [페로티시즘]의 저자이고,
프랑스 파리 제 8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영애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진도 있지만, 사진은 다 아는 사진인 관계로 일단 글만 올립니다.

Posted by outsideart at 04:23 pm | comments (0) | trackbacks

이미지 속닥속닥 메일링 October 04, 2005

이미지 속닥속닥 메일링

미술로 등 긁기
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展 ②

2005_0601 ▶ 2005_1130


05 삼백만원 프로젝트_포스터_2005

강영민_김연태_안중경_양아치_이기일_이호진_정은영(이상 시각이미지 생산자)
김준기_민병직_오혜주_이병희_이은주_윤태건_최금수(이상 기획자)
책임기획_이경복 / 진행_송지영_박야일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주)남양알로에_주)두산의류BG


기획창작공간 산방
서울 광진구 중곡2동 35-10
Tel. 02_2201_8063
www.outsideart.net


「미술로 등 긁기」는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관계에 대한 실험 프로젝트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그 첫 번째 사업으로 「05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05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자신의 한 달 인건비가 포함된 300만원을 지원받은 미술가가 본인의 주 생활공간(거주지 또는 작업실)을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단위의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해보는 것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1)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미술가의 생존방식 / 2) 현재 1% 미술의 물량적이고 편중된 성격에 대한 구체적 대안 / 3) 바깥미술의 다양한 접근 방식 / 4) 미술을 매개로 한 미술가와 주민의 소통 방법 / 5) 미술 유통에 있어 구성주체들의 관계 및 역할 / 6) 미술가들의 새로운 창작방식 및 방향 」등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 가능한 정보로 구축 하여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이다. 이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작업진행에 있어 몇 가지 과제수행원칙과 방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프로젝트 준비 및 진행 과정은 참여 작가 개인의 블로그와 기획창작공간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생생하게 프로젝트 수행 상황을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주)남양알로에, (주)두산의류 BG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관람 ● 각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볼 수 있으며 덧글을 통한 간접적 참여가 가능하다. / 각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어려움, 새로운 발견 등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다. / 각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 다른 작가들의 블로그가 링크되어 있어 쉽게 다른 작업 현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프로젝트 여행’이 가능하다. / 기획창작공간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서 모든 작가의 작업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프로젝트 주요 키워드 ● 1) 삼백만원_프로젝트 진행에 따른 미술가 한 달 인건비(180만원)와 작품진행 경비(120만원)가 합산된 금액이다. 인건비 180만원은 2002년 노동자 평균임금에 근거하고 있으나 향후 보다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으로 이번 프로젝트 진행결과를 통해 다음 프로젝트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인건비의 책정은 작품제작비 지원에 한정되는 기존관행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미술가와 사회의 건강한 관계에 대한 접근 통로이기도하다. ● 2) 블로그_블로그가 갖는 ‘미디어’로서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프로젝트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강화하고 미술의 정적 소통측면에 동적요소를 부여한다. 미술가는 완성된 작품만이 아닌 작업의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미술소비자와 공유함으로써 그 과정에서의 소통을 포함하여 정지된 작품이 아닌 다이나믹한 드라마로서의 미술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미술활동은 그 물리적 장소를 떠나서도 감상의 대상이 되며 또 다른 미술활동들에도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 3) 바깥미술 ● 전시장 또는 미술가의 개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에 대한 공간적 측면에서의 대응어로서 현재 통용되는 공공미술 등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아직 공적 또는 학문적으로 자리 잡은 용어는 아니다. ● 4) 최소단위 지역사회_현대사회의 지역사회는 과거의 공동체처럼 지리적 측면에 의해 규정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본 프로젝트에서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지리적 측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다음 프로젝트에 있어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 기획창작공간 산방

■ 미술로 등 긁기_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展 안내

● 주최_기획창작공간 산방
● 총괄기획_이경복
● 진행_송지영_박야일
● 참여_한명의 기획자가 한명의 미술가를 추천하여 1개 팀을 구성함(총 7 팀)
○ 기획자_김준기_민병직_오혜주_이병희_이은주_윤태건_최금수
○ 미술가_강영민_김연태_안중경_양아치_이기일_이호진_정은영
● 기간_2005_0601 ▶ 2005_1130
● 장소_서울 등촌동_방배3동_양재동 양재천_안국동_사당동_우면동 뚝방마을_서교동
● 관람방법_인터넷 (산방 홈페이지 및 참여미술가들의 개인 블로그)
●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주)남양알로에_주)두산의류BG

● 작가-기획자_프로젝트 팀명_블로그_작업 소개
○ 강영민-민병직_태극기_youngmean.egloos.com_등촌1동 공공미술품 파악 및 큐레이팅
○ 김연태-윤태건_방배3-화장실 프로젝트_yeontae.egloos.com_작업실 건물 화장실에 이용자가 선호하는 이미지 설치
○ 안중경-이병희_양재천 프로젝트_samlim72.egloos.com_양재천 영동1교부터 영동4교까지 애완견 배설물 처리 캠페인
○ 양아치-김준기_김양_yangachi.org/300_북촌지역 핸드폰 방송국
○ 이기일-최금수_프로파겐다_kiil2000.egloos.com_사당동 파출소 화장실 개방 알림 간판 디자인 및 설치
○ 이호진-이은주_뚝방_outpia.egloos.com_철거예상 지역 주민을 위한 쉼터 디자인
○ 정은영-오혜주_정류소_murmuring.egloos.com_서교동 버스 정류소 순환책자

Vol.050828a | 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展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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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기자 회원이 올린 기사 September 26, 2005

오마이 뉴스에 실린 기사 전문입니다.
이미지는 오마이에 가서 보시고 잊지 마시고 오른쪽 가장 아래 있는 '이 기사를 톱으로' 아이콘을 꾹 눌러 주시길...
미술의 간지러운 곳 긁어주는 색다른 경험
<미술로 등 긁기 - 300만원 프로젝트>
송지영(seapoetry) 기자


"관심을 보이는 새로운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거나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

공공미술이 해결해야 할 이 시대 새로운 화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취지로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미술 프로젝트가 지난 7월부터 서울 시내 일곱 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 달 인건비 포함 300만 원을 지원받은 미술가가 본인의 주 생활공간(거주지 또는 작업실)을 중심으로 최소단위 지역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동일한 조건에서 일곱 명의 작가와 기획자가 한 팀을 이뤄 미션을 수행하는 것으로 기획됐다.

작가 정은영은 블로그(정류소팀, http://murmuring.egloos.com)를 통해 "작업을 위한 임금이 아닌 생활을 위한 임금에 떨고 있다"고 고백했다. 관객과 직접 만나는 '바깥미술'에서 작가의 인건비는 대부분 사회봉사를 위한 명목으로 희생되기 일쑤다. 정은영의 작업은 도시의 빠른 속도를 대변하는 버스 정류소의 기능적 면을 고찰하고 그 곳에서 흘러 다니는 작은 책자를 이용해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 보고자 진행되고 있다.

서양화가 이호진(뚝방팀, http://outpia.egloos.com) 은 그의 작업실이 있는 철거예정 지역에 쉼터를 디자인하고 있는 중이다. 마을의 쉼터를 만들고자 하는 소박한 목적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긴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는 이야기꺼리가 많은 북촌(김양팀, http://yangachi.org/300)의 이야기를 핸드폰방송국을 통해 엮어낸다. 일주일에 한번씩 안국동 거리에 나와서 진행하는 랜덤 방송국은 북촌이라는 지역 사회의 문제를 좀 더 넓은 지역의 일반적 문제로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작가 이기일(프로파겐더팀, http://kiil2000.egloos.com)이 추진 중인 파출소 열린 화장실의 Art sign 작업은 경찰청 내부 훈령의 게시물 규정이라는 행정적 문제와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미술은행의 작품을 관람하고 지역 내 공공기관의 미술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자는 작가 강영민(Open the Art Bank팀, http://youngmean.egloos.com)의 작업도 진행 중이다.

양재천에서 쾌적한 산책로를 만들어보자는 서양화가 안중경(양재천PJ팀, http://samlim72.egloos.com)의 프로젝트와 작가 김연태(방배3-화장실PJ팀, http://yeontae.egloos.com)의 '화장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작가나 새로운 관객 모두 새로운 경험을 한 경우이다.

작가들의 색깔에 맞춰 서로 다른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미술의 작은 실험이다. 프로젝트의 실험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작가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와 홈페이지 산방(www.outsideart.net)을 통해 누구나 지켜볼 수 있다. 일반인들 누구나 "아하 이런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구나"라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모여 더 많은 예술가들이 미술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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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the Art Bank' 중간 평가 - 민병직 September 23, 2005

삼백만원프로젝트_중간평가_강영민_강영민 프로젝트에 대한 정리


가. 정리버전 - 현재까지의 진행과정에 대한 요약

태극기 프로젝트에서 오픈 더 아트뱅크로-일종의 정보서비스 개념의 공공미술(등촌1돈 일대)

처음에는 집집마다 한집 태극기걸기를 생각했었는데, 지역의 공공미술환경을 살펴보고 동네주민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반응을 알아가게 되면서 프로젝트의 성격이 좀 달라졌다. 특히 공공기관(대표적으로 동사무소)의 공공미술 환경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등촌동 일대의 주민들이 생각하는 공공미술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지역의 공공기관에 적절한 공공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공공미술에 대한 다양한 의견전달, 인포메이션제시, 작품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해서) 그래서 결국 미술은행제도를 지역주민들과 지역의 공공기관에 직접 연결시키는 형태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상이 개략적인 개요인데 이 과정을 살펴보고 기획자로서 느낀 문제의식을 코멘트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나. 세부변환과정 변환과 평가

“내가 화가로서 지역주민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집에 한 그림 걸기 운동이라도 벌여볼까?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반상회가 열린다고 하니 나가봐야겠다.”


---------------------------------------------------------가장 소박한 단위에서의 일반적인 고민으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작가의 지역 사회 내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수렴할 만한 내용이며 전체 프로젝트와 내용을 공유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다른 팀의 경우도 대동소이하게 지역에서 필요한 공공미술을 알아보려 하였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의 의견수렴을 진행한 바 있다.

“한 집 한 태극기 그림 걸기 운동을 해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태극기는 다의적이기도 하다. 그림걸기에 방점을 둔다면 말이다. 혹은 작가가 그즈음 준비 중이었던 개인전의 내용이 확장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실현가능성은 처음부터 애매한 형태로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전에서 작가가 보여주었던 태극기의 의미라면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로 생각해볼 만 하지만 프로젝트의 제약조건상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다. 물론 그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약조건의 한계를 넘어설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아직은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도 없고, 범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의지만 표출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운동이라 평가한 측면이 이채롭다. 어떤 면에서는 운동으로서의 성격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작업실은 1층이라 동네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지역의 의견 수렴은 이 프로젝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지역에서 필요로 한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측, 조사, 수렴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원하는 것들이란 것들도 단순히 주민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양적인 파악에서 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실적인 조건에서 지역에서 원하는 것들과 절합이 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매개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일 수 있겠고 여기서 좀더 심화된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의견을 수렴할까 하는 것이다.

“05 삼백만원 프로젝트 작업계획
1. 작업명칭 : 태극기
2. 작업기간 : 2005년 8월 10일 ~ 2005년 8월 30일
3. 작업장소 : 등촌 1동의 오피스텔 및 공공장소
4. 작업내용 및 방법
① 8월 10일 ~ 8월 15일 : 동네주변 공공장소의 공공미술품 파악. 시민 설문조사
② 8월 16일 ~ 8월 20일 : 설문조사 결과 각 기관의 장에게 전달
③ 8월 21일 ~ 8월 30일 : 각 기관의 의견수렴과 미술품 대치 제안
* 작업의 모든 과정을 블로그(http://youngmean.egloos.com)에 올린다. ”


----------------------------------------------------------작업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이 시작되었다. 그 출발은 등촌1동에 한정하여 지역에 대해 파악(지역의 공공미술, 지역주민들의 생각들)하여 그 결과를 각 기관의 장(아마도 동사무소라든가 그 지역의 공공기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마도 추측해 보건데 이런 내용들이 아닐까. <경험적으로 확인한 것도 있고 구체적인 실측을 해보니, 지역에 있는 공공미술이 문제가 많고 허술하다-그리고 인터뷰와 설문결과 지역주민들은 그런 공공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견 수렴의 내용 중엔 그렇다면 어떤 미술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의견 역시 들어 있다.-그래서 어떤 식의 미술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주민들의 의견을 공공기관에 전달한다.> 식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다음은 그런 미술품으로 대체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미술품으로 모두 대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정적으로 주민들의 관심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작가의 작업에 대한 개념이 바뀐 면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작가 자신의 작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작업의 의미를 채우고자 하는, 이른바 개념적인 설정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결국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미술품으로 대체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고, 작가의 역할도 많이 축소가 되있거나 개념적으로 전치되어 있다. (일종의 코디네이터, 인포메이션 서비스 전달자로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의견들을 수렴하는 선에서만 프로젝트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의견을 어떤 식으로도 수렴하는 것은 필요하다.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에 따르자면, 문제는 이러한 의견들을 가지고 어떻게 작가가 미술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미술적인 방법이다. 그렇다고 어떤 구체적인 실천으로 한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려가 필요한 사항이다.


“누구나 사는 동네에 수많은 공공기관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공공기관에는 수많은 미술품이 있다. .그 미술품들을 보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십중팔구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의 미술작품의 기능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무색무취의 피드백이 없는 무사 안일한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의 취향에 맞춘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두의 취향에 맞추지 않는다. 그러려면 관심자체를 끌지 않는 작품을 걸어두어야 하는 것 일테니 말이다.:

----------------------------------------------------------------작가의 생각은 공공기관의 미숲품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지역에 대한 고민과도 물론 연결이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동사무소 같은데 걸려 있는 무색무취의 키치 같은 그림들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공공미술의 환경을 작가는 주목하고 있고 이를 어떤 식으로든 개선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식의 시선은 우선 의미가 있다. 지역의 공공기관이라 할 만한 곳 역시 지역의 주요한 공공의 공간이자 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주호같은 작가의 작업이 겹쳐지는 맥락이기도 한데, 강영민 작가는 다른 식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의 미술품 컨설턴트 같은 형태, 그 전거와 맥락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데이터이고, 작가적 노하우를 가지고 컨설팅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 무사 안일한 공공미술환경에 대해 기관과 시민들의 공공미술품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고취하고, 대안적인 제안을 제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의 관건은 뒤의 술어들이다. 기관과 시민들의 새로운 의식을 고취하고, 대안의 제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새로운 의식을 고취시키고 대안을 제시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누락되어 있고 그것을 작가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예를 들어 의식고취도 단순한 설문이나 의견 제시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대안의 제시라는게 의견의 제시만으로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포괄적인 말들이긴 한데, 의미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어떻게 실현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지역주민들과 미술은행에서 구입한 작품들의 매치메이커-미술은행에서 구입한 작품들은 각 공공 기관에 대여된다. 곧 그 작품들은 공공미술작품이 되는 셈이다. 작품 선택을 시민들이 직접 할 수는 없을까? 미술은행 웹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작품을 둘러볼 수있으니 말이다.”그래서 작가는 프로젝트 명을 변경하자고 제안한다. *Open the Art Bank 프로젝트명 변경 요청합니다-확정된 프로젝트명은 '오픈 더 아트뱅크(Open the Art Bank)'-미술은행의 계좌를 연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뀌었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어떻게 보자면 모두의 미술품일 수도 있는 태극기에서 아트뱅크를 열어보자는 것으로... 이런 고민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논리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전개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미술은행 제도 시행과 미술은행의 기능 중의 하나로 설정된 공공기관의 대여가능성을 주목한 것이다. 최근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되고 있는 미술은행이 작가의 공공미술에 대한 의식고취와 대안으로 외삽된 것 같다. 분명 미술은행의 취지에는 이런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으로서 정부는 공급자 측면에서 작가에 대한 지원정책을 펴는 한편 수용자 측면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강화 등 미술 문화의 향유 여건 개선을 위한 정책 들을 추진 중에 있으며, 정부가 미술품을 구입하여 이를 공공기관 및 일반에게 대여함으로써 국민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으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미술은행 제도도 바로 수용자 측면에서의 정책 취지를 감안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미술은행에서 동네의 동사무소에까지 미술품을 대여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제도로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과연 그것이 실현가능한 가에 있고(더 알아봐야 할 사항) 그것이 강영민 작가의 작업으로 대치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의 전달자, 일종의 코디네이터로서의 작가개념이 전환되었는데 이도 논의의 대상일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은 이 프로젝트의 애초의 고민들,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미술과 특히 미술가는 어떤 식으로 사회적인 쓸모를 갖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고 작가는 자신의 쓸모를 의견수렴과 정보제공으로 한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작가개념, 작업개념, 공공미술 개념으로 확장해서 고민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에서 걸린다. 곧 이 프로젝트의 핵심어 중의 하나가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해보자는 것이라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미술적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미술적 방법이라, 적어도 통념상으로는 기존의 작업의 방식들, 미적인 유용성을 창출해내는 일련의 것들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가 반드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식으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것과 연관된 창작의 개념, 미적인 실천의 개념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다. 기획자로서 가장 고민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실천의 주체가 작가이고, 그것이 한달 노동력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작가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은행 제도가 있다 해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미술적 실천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창의적이란 점두어가 피곤하게 따라다니는 작가의 역일 수 있냐는 것이다. 무언가 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지점이다. 물론 아닐 수 없는 이유도 없겠지만.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도 강영민 프로젝트의 가장 관건이 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서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측면이 어느 정도 결합되어야 하지 않을까가 기본적인 소회이다. 뇌와 팔다리의 노동력이 모두 소모된, 그러면서도 기존의 논리들과 구별되는 작가적인 무언가가 결합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인데...그리고 한편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게만 진행될 경우 지역성의 문제가 약간은 탈각된 좀더 포괄적인 문제제기 일 수 있다는 것도 걸린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기 때문에 쉽게 모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미술적 방법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견지하면서 미술은행제도를 연결시켜주는 방식에 있어서도 좀더 구체적이고 진행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 중간평가.

*기획자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작업의 진행이 매우 늦어졌다. 지역과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좀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설문지 작업, 개별 면담 등) 그리고 공공기관 역시 구체적인 실측과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데이터화 작업 역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트뱅크와의 연결지점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지역의 공공미술에 대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단순 외삽되고 대체된 느낌이 강하다. 이런 느낌이 아니기 위한 것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트뱅크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계좌를 어떤 식으로 열까라는 것인데 좀더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와 연관하여

*아트뱅크의 미술품 대여가능성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타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제적인 프로세스는 물론이고 실천형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미술적 실천, 방법에 대한 좀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미술로 어떻게 등 긁냐가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실천에 대한 것들도 다시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작가만의 고유한 개입이란 것도 좀더 차별화시킬 필요가 있다. 곧 지역의 공공미술에 대한 의견 수렴과 공공기관에 대체방향의 제안의 중간과정에 아트뱅크만이 아닌 작가적 개입, 작가적 실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진행형으로 해야 할 듯 싶다.----이 부분은 아직까지 단언할 무제는 아니긴 하다. 미술을 포함하여 공공미술의 영역을 넓혀서 생각해보면 분명 가능한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웃풋 작업에 작가의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 하지 않을까가 문제의식이다. 마을의 주민들이 잘 모이는 장소에서 전체 작업의 과정을 보여준다든지, 지역의 방송에 출현하여 이를 알린다든지, 반상회 회보에 이 내용을 알린다든지, 일일 퍼포먼스를 수행한다든지, 현수막을 디자인하여 내건다든지, 모 여튼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종적인 내용의 하나로 작가 거주기반의 지역사회 미술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것 인만큼, 그 가능성의 과정을 도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세스와 프로세스의 과정에서 생기는 데이터화 작업, 샘플링 작업이 요청된다. 일종의 모델화 작업 역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 부분은 아마도 기획자의 몫도 들어 있는게 아닐까 싶다.

*프로젝트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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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뉴스는 정말 취재한 정보 그대로? September 20, 2005

김종휘 문화공감 '노컷뉴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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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등긁기>라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장소는 양재천 산책로, 노후한 건물 화장실, 사당동 파출소 화장실, 우면동 철거예정지역 뚝방마을, 서교동 버스 정류장 등인데요, 젊은 기획자 7명과 젊은 작가 7명이 조를 이뤄서 미술로 등을 긁는다는군요.

뭔 등? 이들이 생각하는 미술은, 가려운 등 긁는 데도 쓸모가 있었을까 싶을만큼 생활과 동떨어진 기존 미술의 쓸모를 되찾기 위한 사회적 실천이고 모색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7군데 중에서 화장실이 2곳이고, 양재천 산책로에서 하는 것도 애완견 배설물에 대한 것이라니, 변과 관련된 아이템이 3개나 되는 겁니다.

이거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미술의 쓸모라는 것이... 생활과 다시 관계를 찾으려면, 먹고 싸는 일,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배설물인 똥과 화장실에서 미술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한편에선 피식 웃게 되고 다른 한편에선 실로 의미심장한 뜻의 메시지가 돌아오더군요.

민병직 씨는 고대 철학과와 홍대 미학과 석사를 거쳐 사트선재센터와 가나아트에서 큐레이터를 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은영씨는 이대 서양학과와 영국 리즈대 석사를 거쳐 다양한 전시를 했고 현재는 쌈지 스튜디오 입주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이렇듯 화려한 경력과 고학력의 미술계 인재들이 7군데 프로젝트당 300만원만 갖고, 그것도 180만원은 인건비로 꼭 써야 하고 나머지 120만원만 갖고 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6월부터 11월까지 현장 조사하고 회의하고 이동하고 작품 만들어 설치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인건비라는데, 이조차 민주노동당에서 2002년에 정한 기본 임금 규정에 준하는 것이랍니다.

왜 그럴까? 미술작가의 관행이, 예컨대 총 비용이 1,000만원이어도 제작비로 다 쓰고 인건비는 챙기지 못하는 식인데, 삼성화재의 고 구본주 조각가에 대한 폄하 논쟁이 비정규직 또는 프리랜서 등과 관련이 되니, 이또한 매우 시사적이었습니다. 정은영 작가는 "와, 임금을 받다니, 나도 임금노동자가 되었어요!" 하면서 반기던데, 그 속내가 복잡하지 싶더군요.

어쨌든 소위 잘 나간다는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의기투합해서 이렇게 우리 시대의 미술, 미술가, 미술작품에 대해 근본적인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소한 이들로 인해 우리는 화장실과 배설물에서 미술의 쓸모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니, 혁명 없는 시대의 조용한 혁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들의 <미술로 등 긁기> 프로젝트는 그 전 과정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고 있답니다. www.outsideart.net 그리고 10월 말경에 가면 7개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품평회를 갖는다고 하는군요. 그 사이에 한명이라도 더 화장실에서 자신의 배설물을 쏟아내면서 미술을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민병직씨와 정은영씨가 무엇보다 바라는 일일 테니까요

Posted by outsideart at 06:04 pm | comments (0) | trackbacks

임금노동자니까 준법 투쟁을? September 14, 2005

미리 알려드린 대로 오늘 정오에 open the art bank 팀의 민병직님과
정류소의 정은영님이 CBS 라디오 김종휘의 문화공감 '인물 공감' 편
생방송 인터뷰를 방금 마치셨습니다.

미술로 등 긁기가 3년 동안 진행될 예정이고,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를 찾는다는 것,
작가의 인건비를 챙겨준다는 것에 대해 진행자 김종휘씨와 더불어
편안하게 가볍고 유쾌한 인터뷰를 마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일곱 팀 중 세 팀의 작업이 "변"과 관련된 것이라 김종휘씨에게는
중요한 화두였다는 인상적인 클로징 멘트로 마무리된......

블로그에 공개하셨듯이 작가 정은영님은 인건비를 받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잠시 사보타주도 준법투쟁이란 생각에 작업 초기 작업을 미루셨다는 말씀까지..

미술의 사회적 쓸모를 찾기 위한 상징적이고 적은 금액이 이 프로젝트를
다른 언론들도 이 프로그램만큼만 관심 가져줬음 좋겠다는 짧은 생각을 하며.

Posted by outsideart at 01:02 pm | comments (2) | trackbacks

[주간동아] 문화캘린더 September 09, 2005

보도자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이고, 양재천 프로젝트 사진을 달라고 했던
주간 동아에 기사가 났습니다. 9월 13일자 502호 27p에 실릴 기사 본문입니다.

donga.jpg

기사의 내용 중 '창작공간 산방'은 '기획창작공간 산방'으로 정정합니다.
그리고 바깥 공간으로 나간 작가들 중 조각을 하겠다는 미술가도 없다는 점도.
그리고 문화캘린더의 기간도 저희 프로젝트 기간과 전혀 다르군요^^*

Posted by outsideart at 03:21 pm | comments (3) | trackbacks

[한겨레] 미술, 화장실에 가다 September 07, 2005

미술, 화장실에 가다

#1 작전명 ‘삼백만원을 써라!’
미술가 - 기획자 1명씩 짝을 이룬 7개팀이
달랑300만원 들고 도심에 뛰어들었다

미술기획자 이경복(기획창작공간 산방대표)씨는 6월 초 서울 곳곳에 작업중인 젊은 미술가 7명에게 ‘괴팍한’ 작업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삼백만원을 줄테니 당신 작업실 주변의 주민들과 지역 사회를 위한 미술 작업에 알아서 쓸 것, 단 180만원(이중 30만원은 기획자 몫)은 반드시 임금으로 챙기고, 나머지 120만원으로만 작업할 것, 절대 임금을 작업비로 돌려 쓰지 말 것’. ‘미술로 등긁기’란 제목이 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동시대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를 300만원이란 소액으로 실험한다? 고개를 갸웃거렸던 작가들은 생애 처음 임금을 받아본다는 뿌듯함(?)에 기꺼이 작업 계획을 꾸렸다. ‘생돈’을 받은 작가의 이름은 강영민 김연태 안중경 양아치 이기일 이호진 정은영씨. 소장기획자 김준기 민병직 오혜주 이병희 이은주 윤태건 최금수씨가 각각 짝을 이뤘다. 작가들이 내놓은 계획서는 7인7색. 김연태·윤태건씨 팀은 작업실이 입주한 방배 3동 삼원 빌딩의 낡은 화장실을 아트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안중경·이병희씨 팀은 양재천 보행공간에 대형 개똥 조형물을 설치해 애완견 사랑과 개똥 수거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고, 이기일·최금수씨 팀은 사당동 국립묘지의 콘크리트 담장 리모델링, 이호진·이은주씨의 ‘뚝방’팀은 우면동 무허가 빈민촌에 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정은영·오혜주씨 팀은 서울 홍대 입구역 버스 정류소에서 승객들에게 아트북을 슬쩍 나눠주는 얼개를 내보였다. 양아치와 김준기씨의 ‘김양’팀은 서울 북촌 지역의 풍문여고생들이 만드는 휴대폰 인터뷰 방송을 통해 열악한 학교 매점 개선작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예정된 작업 마감 시한은 오는 15일. 지난 6월 23일 중곡동 산방에서 모여 의견을 나눈 뒤 각기 흩어져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과정은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2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힘들고 좌절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공공과 소통 소중한 길 딱는다

지금 작업들은 어떤 성과를 냈을까. 2일 기획자 이경복씨, 작가 이호진 안중경 이기일 정은영씨와 작가 김연태씨의 방배동 작업실 건물의 2층 화장실을 찾아가 봤다. 우윳빛으로 칠해진 차분한 실내 분위기, 노랑·빨강·투명 타일이 프레임처럼 거울과 애장품 화폭을 두른 남녀 화장실의 자태는깔끔하다. 마지막으로 드라이 플라워, 찻잔보 등의 입주자 애장품을 모아 붙이고 있는 김씨는 “건물 관리 운영위의 허락을 얻어, 입주자에게 공문을 돌리고 협찬을 요청하는 귀찮은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처음엔 입주자들이 “왜 돈 들여 이런 일 하느냐”며 슬슬 피했다고 한다. 적은 돈으로 공사 업자에게 애원하는 것도 힘들었다. 600만원이나 됐던 공사비를 200만원으로 줄이고, 입주자들의 푼돈 협찬을 얻어 리모델링을 하자 그는 건물의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주차비 내지 않는 특전도 누리게 됐다고 한다. “관리인쪽에서 고맙다며 대청소를 해주고 청소인력을 더 고용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어요. 입주자들의 행동 방식이 바뀐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3 고생 좀 할거야! ㅋㅋ…!

300만원 프로젝트의 발신자인 이경복씨는 20년간 바깥 미술 운동에 전념해온 기획자다. 2002년 서울대로변 벽화 보고서 전을 기획하기도 했던 그는 실시간으로 올라온 작업상황을 내내 지켜보면서 작가들 고생 좀 하겠지하고 키득거렸다고 했다. “어려운 숙제를 낸 거죠. 사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 성과보다 지역사회, 주민들과 미술인들이 부대끼고 작업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체험하고 기록으로 남겨 공공미술의 전략 전술을 닦는 거니까요. 지자체, 지역 공동체와 교감만 되면 건축비 1%를 미술장식품으로 사는 현행 법제 말고도 내실 있는 공공미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

문예진흥원과 기업들 협찬을 받아 성사된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주택가 등의 작은 벽화 운동을 구상하다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삼백만원으로 알아서 작업 구상하고 알아서 주민들 만나 부대끼는 게 더욱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작가들에게 지급된 180만원은 2002년 민노당에서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액을 책정할 때의 액수다. “작가의 급여 책정 기준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프로젝트 과정에서 정보가 쌓이면 어렴풋하게 작가 급여 기준도 잡히겠죠. 사회에서 어떻게 미술가로 먹고 살까 감냥해보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클 겁니다.”이씨는 이런 소프로젝트가 소소해 보이지만 성과가 쌓이면 미술동네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4 실패도 성과다!

작가들은 화장실 품평회가 끝난 뒤 삼겹실 집으로 달려갔다. 흥겨운 뒷풀이 시간, 부러운 눈길로 김씨의 화장실을 품평한 다른 작가들은 이어 자신들의 좌절담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지난달 21일 양재천에 스티로폼 개똥 조형물을 들고 나갔던 안씨는 개똥에 그림 그려넣기와 개똥 수거용 비닐봉투 나눠주기 등을 진행했으나 제작비용을 초과한데다, 작품 이동이 어려워 하루 해프닝으로 작업을 끝냈다. 우면동 무허가촌에 쉼터 건물을 놓으려던 이호진씨는 철제 기둥 등의 자재까지 준비했으나 다른 속셈이 있지않느냐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쉼터 건립을 포기하고, 평상 등 가구 리모델링 쪽으로 틀었다. 이기일씨도 구청쪽에서 2007년 국립묘지 담장을 투명 담장으로 교체할 예정이어서 불허한다는 방침을 듣고, 유흥가 파출소의 화장실 표시판 디자인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고 털어놨다. 진짜 예술과 사회의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더 고민하고 겸허해져야 하는지… 이들이 술잔 부딪치면서 낸 결론은 미술이 공공과 만나는 교감의 토대는 오롯이 작가들 체험으로 닦아야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내후년까지 진행할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진짜 목적도 그렇다. 산방쪽은 10월초 일반 모니터와 평론가들을 초청해 프로젝트 품평회도 열 예정이다. 지금도 작업은 인터넷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02)2201-8063.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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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CBS '김종휘 문화공감' August 03, 2005

CBS 라디오 시사 전문 채널 표준 FM 98.1Mhz에 오늘 12시 15분 경부터 방송된 '미술로 등 긁기' 프로젝트 총괄 기획자 인터뷰 내용입니다. 1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프로젝트에 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Posted by outsideart at 03:10 pm | comments (0) | trackbacks

[컬쳐뉴스,일일문화정책동향] 미술가도 쓸모있다? August 02, 2005

바깥미술 프로젝트 ‘05 삼백만원 프로젝트
‘05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한 명의 기획자와 한 명의 미술가가 1개 팀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 ‘05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한 명의 기획자와 한 명의 미술가가 1개 팀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최근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쓰임과 그 관계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획창작공간 ‘산방’에서 펼치는 바깥미술 프로젝트 ‘미술로 등 긁기’ 사업 중 첫 번째 사업 ‘05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05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한 명의 기획자와 한 명의 미술가가 1개 팀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자신의 한 달 인건비가 포함된 3백만원을 지원받은 미술가가 자신의 생활 공간을 중심으로한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미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해보는 것이 미션이다.

즉, 각 팀은 설정한 지역 사회에서 하나 이상의 문제를 선정하여, 미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게 된다. 그 결과물은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와 자료집으로 자료화되어 사회적으로 공유될 예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 미술과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와 미술가의 생존 방식 ▲ 현재 1% 미술의물량적이고 편중된 성격에 대한 구체적 대안 ▲ 바깥미술의 다양한 접근 방식 ▲ 미술을 매개로 한 미술가와 주민의 소통 방법 ▲ 미술 유통에 있어 구성 주체들의 관계 및 역할 ▲ 미술가들의 새로운 창작방식 및 방향 등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다.

관람자는 참여 작가 개인의 블로그와 산방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프로젝트 준비 및 진행 관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어려움, 새로운 발견 등 모든 과정을 공유할 수 있다.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팀은 모두 7개 팀이다. 작가 강영민과 기획자 민병직으로 구성된 ‘태극기’팀은 등촌동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주민의 이용 공간에 문화예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김연태와 윤태건의 ‘방배3-화장실PJ’팀은 방배동 작업실 건물의 화장실에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설치하여 편안한 화장실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안중경과 이병희로 구성된 ‘양재천PJ'팀은 양재천 영동 1교부터 영동 4교를 장소로 하여 작업하고, 양아치와 김준기의 ‘김양’팀은 관훈동 북촌 지역을 주 무대로 한다. 이기일과 최금수가 구성한 ‘Propaganda'팀은 사당동 국립묘지 주민 산책길에 벽화를 제작할 예정이며, 이호진과 이은주의 ‘뚝방’팀은 우면동 작업실 주변 철거예정 지역에 쉼터 디자인을 구상 중이다. 또한 정은영과 오혜주로 구성된 ‘정亭류流소所’팀은 서교동 홍대입구의 버스 정류소를 대상으로 작업할 계획이다. 모든 작업 진행은 9월 15일에 마무리될 예정.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팀은 모두 7개 팀이다

‘바깥미술’은 전시장 또는 미술가의 개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에 대한 대응어로 현재 통용되는 ‘공공미술’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아직 공식적으로 자리 잡은 용어는 아니다.

‘산방’은 내년에도 ‘미술로 등긁기 06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의  기획창작공간 산방(전화 02-2201-8063)

편집: [김선아] 2005-08-01 오후 5: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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