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한가로운 날입니다. 집에서 딱 세시간의 과외교습(!)을 하면 되는 날. 아침부터 광나게 청소까지 해대면서 모처럼의 시간을 썼더랬어요. 그래서 이제 조금 차분히 이 프로젝트를 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어 봅니다. 내일이면 또다시 헐떡대는 시간과의 전쟁이 시작될게 뻔하거든요.
이 프로젝트의 초반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저는, 어디 매어있는 직장도 없고 수발해야할 남편이나 자식새끼도 없고, 돈은 더더욱 못버는 쓰리아웃인생이랍니다. 그런데 아니 뭐 가 그리 바쁘다고 매일 징징거리는 걸까.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것 같아 조금 소심해 집니다. 사실 말이 좋아 '후리'하게 사는 아티스트 인생이지, 문화생산은 물론, 각종 잡일 알바를 따라다니기 위해서는 늘 시간을 헐렁하게 비워두고, 괜찬은 프로젝트나, 일용할 임금을 주실 분들의 전화를 지둘리면서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죠. 그렇게 불안불안허게 살다보며는, 시간이 있어도 있는거 같지 않고, 밤낮은 완전히 뒤바뀌어 관공서 근무시간과 점점 멀어진 인생을 살면서도, 매일 마음만은 대한민국을 별자로 돌아댕기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 살아봐야, 손에 남는건, 전시가 끝나고 쓸모없어진, 어디 놓아둘 자리조차 없는 산업폐기물 덩어리들, 벽에 걸어두고 싶어도 온가족의 반대에 부닥치고 마는 알 수 없는 이미지들.그리고 점점 바닥을 쳐가고 있는 저금 통장들. 점점 추례해져 가는 외모와 정신적인 피폐함들. 들. 들. 뿐이죠
나는 늘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릴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을 합니다. 저사람도 나처럼 돈을 못벌까. 저사람도 나처럼 사회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할까? 저사람도 나처럼 피곤할까? 그렇게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하고 질문하고 상상하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피곤하고, 지치고, 가끔은 자기혐오에 빠지곤 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비로소 나는 그리 특별하지 않아! 라고 자족하곤 합니다.
정류소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삼백만원을 줄테니 작품을 하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앞뒤 보지 않고, 강의도 없는 방학에 임금이 생긴것에 기뻐할 따름이었죠. 그러나 그들의 제안은 '공공을 위한 미술'일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삼백만원으로 나의 노동력을 가치있는 것으로 돌려내는 동시에 공공을 위해 미술적인 작업을 해야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공공성'이라는 말에 큰 의구심을 가지고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나는 공공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거니와, 공익과 공리보다는 개인의 쾌락이 늘 우선해야한다는 가치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죠. 나는 사실 거리에 있는 90%가량의 벽화나 공공 조각, 공원, 공중화장실등을 무척 싫어합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들의 혁명에 가담하지 않겠다"던 엠마 골드먼의 말은 아예 적어가지고 다닐 정도인데, 나는 무엇을 공공에게 돌려 놓아야 하는 것일까. 공공성이라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리 명쾌한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쨋든 임금을 받은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시 자본의 약빨은 최고 입니다. 하여 저는 넘어진김에 쉬어가고 노느니 개팬다는 엣 어르신들의 헛소리를 이기회에 온몸으로 체득하고저 '공공성의 비밀'을 밝혀 주지 않는 주체측을 향해 며칠간의 파업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러자 왠지 진짜 임금 노동자가 된것 같아 조금 후끈해 지기도 했습니다. 체현의 정치란 그런것이였습니다.
공공성에 대한 나의 해석은 보다 정서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에게는 어떠한 집단에 끼어들어가거나, 관공서를 설득하거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예술가적인 윤리를 짚어보는 정도의 센스가 없는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필사적인 미술의 영원한 숙제인 "소통"의 지점에서 정서적인 공공성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미간을 찌푸린채로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소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정류소는 기다림의 장소이기에 停留所 라고 쓰지만, 정류소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죠. 정류소는 오히려 늘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한 영원히 흐르는 장소였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거는 것은 오히려 공공의 적이 될 소지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이 끊임없이 흐르는 장소에서 어떠한 얘깃거리 하나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 장소가 그들을 잠시라도 집이나 일터가 아닌, 조금은 다른 저편의 상상의 공간, 환영의 공간으로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停留所를 停流所로 바꾸어내고, 나의 이야기를 담아 작은 책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정류소에 비치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가져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내가 가끔 버스정류장에서 하는 생각들이예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생각을 그들도 할 것이라고 믿었죠.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그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스를 얻어내기도 했어요. 이야기를 채워가는 작업은 조금 외로왔어요.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는 버스와 같은 탈것에 정말 잘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죠. 다행히 나는 그간 몇몇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고,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와 이미지를 담은 책이 만들어 졌습니다.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주고 친구를 고용해 함께 일했죠. 그래서 일은 더 쉬워졌습니다. 물론 배포의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말예요.
책이 모두 인쇄된 후에, 나는 마치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마냥, 쇼핑백에 책을 넣어 다니면서, 홍대주변의 한 정류소에 책을 몰래 놓고 오곤 했습니다. 어떤날은 아침에, 어떤날은 아주 한밤중에, 어떤날은 벌건 대낮에, 어떤날은 나도 버스를 기다리는척 정류소에 앉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어떤날은 파파라치 처럼 먼곳에서 바라다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죠. 그리고 어떤날을 책을 놓아두자마자 재빠르게 그 장소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더군요. 무엇이 놓여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고, 관심을 가지지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금새 시선을 옮겨가곤 했죠. 관심있게 한장한장 책을 들여다 보던 사람들도 책을 그냥 그자리에 놓고 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몇권이나 가지고 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강적이었던 사람들은 소위 아줌마라 불리는 군단과 청소부 아저씨 였죠. 아줌마들은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할 장소에 놓여있는 이 불청객에 짐짓 화가 났던지, 책을 밀쳐 버리고 엉덩이를 들이밀기 일쑤 이고, 행여나 청소부 아저씨에게 붙들려 모조리 쓰레기장 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청소부 아저씨가 나타나면 그자리에서 아저씨가 갈때 까지 지키고 서있거나, 다시 책을 회수해 도망가곤 했어요. 그렇게 약 한달여에 걸쳐 500권의 책이 배포되었고, 소비되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그래서 나는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을 획득한 것일까. 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제 머릿속엔 이 책들이 사람들의 손과 손을 타고 이동해 다니면서 사람사이의 공간들을 메꿔 갔으면 하는 기대가 들어있지만, 아직 그 결과나 증거를 찾을 수는 없어요. 일전에 <밑줄긋는 남자>라는 책을 친구와 보면서 재밌어 했던 기억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누군가가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해둔 것을 보면서 짐짓 강한 소통의 그리움을 느끼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말이죠. 그러한 정서적인 교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가고, 흐르고 이동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의 떨림이 얼마나 많은 경계들을 지워내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이 작업을 이끌어 왔고, 사람들에게로 다가가게 했죠.
어느날 어느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나는 잠깐, 공공을 위한 미술이란 그런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의 주변에 늘 산재해 있는 차고 넘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거나, 혹은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길에 놓여진 흔해 빠진 멈춤 표시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요. 뭐 여전히 잘 모르겟지만요.
정류소라는 말은 늘 '기다림'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며, ‘기다림’이란 ‘여성’으로 성별화 되곤 했다. 실제로, 여성들의 여행이란 전통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것, 혹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여성의 미덕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에게 투사되어왔지 내키는 대로 길을 떠나 온갖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오디세우스에게 투사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은 "창녀"이거나 "거지"인 비천한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근대적 인간인 보들레르의 ‘산책자(Flaneur)’는 근대화된 도시문명의 탄생과 함께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왔다. 더구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sation)이라는 세계자본의 재편성 위에서, 여성의 여행 혹은 국가경계 넘기라는 장구한 프로젝트는 값싼 노동력의 제공이나 성적인 기여에 집중될 뿐이다.
현실의 무게가 등을 누르고 목을 조여올 때 많은 사람들은 쉽게 여행과 일탈을 꿈꾸지만, 여성들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낭만이나 욕망이라기 보다는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오는 것이기 쉽다. 이 프로젝트는 여성들의 욕망과 공포 사이에 존재하는 그들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이행의 공간으로서 정류소를 설정하고, 기다림의 공간인 정停류留소所를, 끊임없이 사이공간을 흐르는 떠나기 위한 장소, 아무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장소인 정停류流소所 로 바꾸어 냄으로서 정류소를 의미화 한다.
2. 작업 내용
2-1. 장소
작가의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장소를 선택한다는 프로젝트의 룰을 따라, 서교동의 한 버스 정류소를 선택한다. 이 정류소는 유동인구가 많고, 연령적으로 2-30대의 이용이 잦으며, 비교적 문화적 포용도가 높은 지역이라 판단된다.
2-2. 작업방식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도록 작은 책자를 제작, 배포한다. 책은 소설의 형식을 띄며, 2주일간 불규칙적으로 배포된다. 일종의 순환문고 형식을 띄게 하여 책이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따라 흐르고 순환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한다. 공공미술이라는 명분을 취하는 만큼 최대한 다양한 계층과 연령, 다수의 사람들이 접 할 수 있는 전략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3. 작업 일정
8월 1일 -28일 : 책의 내용 만들기, 다듬기, 이미지 만들기.
8월 29 – 9월 4일 : 책 디자인, 인쇄
9월 5일 – 18일 : 배포
9월 19일 – 30일 : 과정, 피드백, 효과등 수집 및, 결과정리
3. 예산
*작가 임금 150만원
*큐레이터 임금 30만원
*인쇄비용 80만원
*디자인비용 30만원
*기타 잡비 10만원
=총 소요예산 300만원
직업은 예술가예요.
어젯밤 친구에게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다.
정차중이던 친구의 꾸린 티코를 티코의 몇배가 될지도 모를 렉스톤이
주륵 달려와 질질 끌고 몇미터를 갔다는것.
예의 교통사고의 순서에 따라 보험사가 달려오고
목청이 커지고 경찰서에 갔다가 현장 검증에..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친구가 울분을 토한것은
너무나 명백하기 이를데 없는 이 상황에
경찰이 렉스톤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렉스톤의 임자인 마초아저씨는
다짜고짜 자기차가 사천만원짜리라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것으로
젊고 별볼일 없어 보이는 여자애의 기를 눌러놨고,
양측의 보험사 직원들이 달려왔음에도
아저씨의 보험사 직원만 디비 소리를 지르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아한 나와 친구들은 너희 보험은 어느회사 것이냐 물었더니,
삼성화재라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삼성화재가 질리가 있나. 그것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다 이겨먹는 것덜인데."
차가 없고 심지어 면허증도 없고, 면허 시험에서 7전 8기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8번의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평생 면허를 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나에게
삼성화재 자동차 보험의 막강 능력이 어떤것인지는
전혀 모를일이지만, 적어도 "아하. 구본주와 삼성화재!!" 하는 생각이 났던것.
삼성화재가 얼마나 잔학 무도하게 자본을 따라다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구본주 사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뭐랄까 뭔가 모를 복잡함이다.
뭐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나처럼 나태하기 이를대 없는 게으른 작가들은
차마 어데가서 내 직업은 예술가 예요. 라고 말하기가 매우 미안해 지기 때문이다.
nine to six도 모자라 허권날 야근을 밥먹듯 하는 회사원들은
한치의 의심없이 회사원이라고 불리워 지는 것일텐데,
9시에 일을 시작하기는 커녕 9시에 잠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는것도
힘들어 절절매는 나는 하루에 몇시간이나 예술노동를 하며 살고 있는걸까.
심지어 얼마전엔 누군가 작품가를 물어왔음에도
어째 이런 시추에이션에 세련되게 대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심과 연연으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한 게으른 예술가에겐,
아직도 종종 이 삼백만원 프로젝트가 일종의 부채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직업은 예술가예요. 나는 예술노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라고 얼굴들고 말 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온단 말이냐.
(그래도 나도 풋풋하던 학생시절엔,
요새 작가들은 너무 순수하지 못하게 인기와 돈에 영합한다며 훈수를 두시던 한 노교수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가가 작품팔아 먹고사는게 순수하지 못하다면, 몸 팔아 먹고살아야 순수한건가요?"
라고 깝친적도 있다. 세상이 무서운지 몰랐던 시절이였던 것 같다.-_- )
잠깐 중학교때 돌려보던 '순환문고' 따위를 떠올려 봅니다.
뭐, 방법이 어쨋건 일종의 도서관 시스템인 것인데,
정류소라는 말에 도서관이라는 말을 살짝 포개어 봅니다.
...좀 안어울리는 군요.-_-
일테면 이런것입니다.
정류소에서 기다리며 이야기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해놓습니다.
(이야기책의 내용은 앞선 포스트에 올린것과 같은 흡사한 내용들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 집어들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죠.)
이야기책은 한 정류장에서, 혹은 몇몇의 정류장에 마련됩니다.
이야기책은 버스에 들고 탈 수 있으며, 버스에서 내린 다른 정류소에 다시 놓여지도록 합니다.
(어떻게? 메뉴얼을 적어야겠죠. 어지간하면 지켜질 수 있도록 )
누군가 정류소에서 이야기책을 줍는다.
->버스에 들고 탄다.
->읽는다 (메모를 해도 무방. 메모를 하면 더 좋겠죠.)
->내리는 곳의 정류장에 반납.
->누군가 다시 집어 든다.
->반복
그래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흐릅니다.
문제는 순환되는 과정이 채집되기 힘들다는데에 있습니다.
순환문고는 꼭 중간에 몇권이 분실되곤 했죠.
몇회에 걸쳐 작정하고 미행을 해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_-
차가운 손을 가진 이방인의 이야기 The Story about an Alien with Cold Hands
#0.
그 여자가 대체 어디에서 이 도시로 들어오게 된 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떠나는 이 익명의 도시에서, 그 여자의 행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 여자는 -나 또한 그렇듯이- 이 도시를 잠시 거쳐가는 수많은 이방인들 중의 하나일 것이 분명할 터였다.
#1.
내가 이 도시로 들어온 것은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하루하루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뿐,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을 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힘들었을 때, 차라리 누군가에게 내 영혼을 팔아 치우고 싶을 지경이었을 그 때, 나는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것을 처분하고 달랑 여행가방 하나를 채워 길을 나섰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잘 떠오르지 않았고, 생각만큼 유연한 '유목'을 할 수 있지도 않았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삶을 얻었지만, 나는 언제나, 떠날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머무를 것을 생각하곤 했다. 머무를 장소가 정해지면,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들, 조금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한 살림살이들이 필요했다. 결핍의 느낌이란 순식간에 불안을 부르고, 피해의식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보다 안전하고 보다 안락한 생활이란 어쩌면 다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사실 전혀 손에 닿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 낯선 도시 위에서 겁에 질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보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누군가 함께 있어줄 사람마저 필요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기대하고, 쉽게 쉽게 겁에 질리고, 공허한 기분이 되어버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몸만큼이나 모든 경우를 적응해 나가고, 오히려 그 상황에 맞추어 변해가기까지 하는 것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토록, 단 한 순간마저 참아내기 힘들만큼 괴로워했던 내 몸은 이렇게 줄기차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어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가진 물건들은 하나 둘 없어져 버리거나 제 명을 끊어갔다. 작은 귀걸이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손에 끼고 있던 반지가 어느 샌가 두 쪽으로 쪼개어져 버렸고, 어느 날은 멀쩡하던 신발이 찢어지더니, 또 어느 날은 순식간에 목걸이가 끊어지면서 구슬들이 온통 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구슬들을 힘들게 주워 모아 몇 시간이나 공들여 꿰어보았지만, 목걸이는 본래 길이의 반도 되지 않았다. 가방의 끈이 끊어지거나, 머리카락을 묶은 고무줄이 끊어져버리는가 하면, 얼마 되지 않는 옷 중의 하나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문을 잠그려고 열쇠를 꺼냈을 땐 열쇠고리의 장식에 금이 가 있기도 했다. 밥을 먹으려는데 젓가락이 부러지고, 그릇의 이가 나가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내 몸은 이 도시의 모든 낯섦에, 적어도 내 몸에 지닌 물건들보다는 좀더 무디게 반응하면서 잠시도 숨쉬기를 멈추지 않았다.
#2.
그 여자를 처음 본 건, 이 도시로 들어와 잠시 머무르던 한 지저분한 모텔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꽤 긴 시간 동안이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루해 하던 몇몇의 사람들 틈에 여자도 끼어있었는데, 무척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그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자기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새빨간 색의 여행용 가방에 한쪽 팔꿈치를 걸치는 것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그 여자는 어딘가로 떠나는 중이거나, 혹은 어디에선가 떠나온 것임에 분명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던 몇몇의 사람들 중에서 유독 그 여자를 관심 있게 살피기 시작한 것은 여자의 손이 언뜻 푸른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끝나고 있다고는 했지만,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이 도시의 날씨란 지독하게 변덕스러워서, 따뜻해지는가 하면 이내 매서운 돌풍이 불기도 했으니, 종종 사람들은 추위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날도 갑작스레 불어 닥친 바람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지만, 저렇게나 파래지는 손이라니. 여자의 손가락은 지나치게 가늘었고, 지나치게 푸른 기를 띄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사람의 손이 그렇게 파래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계속해서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에도, 여자는 연신 자신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는데, 여자의 그런 노력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그 가냘픈 양손의 푸른 기는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곧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고, 다행이 여자가 그 버스에 올라탔기에 나는 일부러 여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 안에서도 여자의 신경질적인 손놀림은 그치지 않았고 푸른 기 역시 그대로였다. 나는 어떻게든 그 여자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갑자기 지금까지의 나의 행동이 무척 우스운 짓처럼 느껴져 창 밖으로 눈을 돌려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머잖아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곳에 정차했고, 버스가 그곳을 떠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버스 안 여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3.
낯선 사람에게 관심 갖는 일 따위는 적어도 나에게는 치가 떨리도록 혐오하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상하리만큼 다른 이들의 일에 관심을 갖고, 가끔은 관심을 넘어서 지나칠 정도의 참견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진심으로 살의를 느껴왔던가. 그럼에도 나는 간절히 이 여자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욕망. 그것은 분명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감정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더욱 스스로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것이 나에게 있어 용인되거나, 그럴 수 없는 것이며, 나는 또한 얼마만큼 단호하게 내 안의 감정들에 대해 정의 내리고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최대한의 자제력을 동원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 이상한 감정을 떨어내려 애를 써 보았지만, 이 여자와 말해야만 한다는 제어할 수 없는 욕구는 이미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내고 있는 중이었다.
#4.
여자는 손을 주무르는 것을 포기하고는 고개를 창 쪽으로 살짝 돌리며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자의 얼굴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고, 여자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바짝 쓸어 넘겼다. 여전히 창백한 푸른빛의 손. 버스 안은 무척 따뜻해서 창문은 온통 부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옷깃을 꽁꽁 여미던 사람들은 겉옷을 하나 둘 씩 벗어 들었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추위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손을 쥐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 손이 분명히 차가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여자가 다시 손을 들어 김이 잔뜩 서린 버스의 창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소리를 내면서 여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 단조로운 마찰음이 여자의 손이 울고 있는 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빠져 넋을 잃고 여자의 손놀림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5.
여자의 손이 울고 있다는 건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 손으로 우는 사람을 본적은 없었지만 이 여자의 손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서럽게 우는, 그런 여자들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나에게는 그 연상작용을 설명할 재간이란 없다. 그렇지만 저렇게나 푸른 손을 가진 사람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6.
아까부터 날 보고 있었죠? 여자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너무나 놀라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여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때까지의 나의 행동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떠올리고, 다시 수정하고, 떠올리고, 지워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둔감할 수가. 몇 번이고, 입을 떼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재치 있는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게 미안한 표정은 할 필요 없어요. 나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까.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정신 없이 맥박이 뛰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여자에게 말했다. 손이, 손이 무척 시렵지 않나요. 여자의 얼굴에 짧은 순간 미소가 지나갔고, 나는 나의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말주변을 탓하고 있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요, 무척. 누구든 그걸 알아차릴 수 있겠죠, 이렇게 파랗게 질린 손이라니.
#7.
어디서 내리나요? 짐, 이 무거워 보이는데, 도와, 드려, 도, 될, 까요. 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고 여자가 대답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나에겐 마땅히 가야 할 목적지가 없는 걸요. 찾아야 할 곳이 있긴 하지만 말예요. 실은 어디서 내려야 할까를 생각 중 이였어요. 버스에 탄 이후부터 줄곧. 이 짐을 끌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까마득해서 몇 번이나 내리는걸 포기하기도 했지만요. 여자의 푸른 손이 빨간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우습지 않나요, 이런 변변찮은 몸뚱아리 하나를 지탱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아직 버려야 할 것들,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텐데, 이상하게도 짐은 차츰차츰 늘어만 가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여행을 지속하기엔 이 가방은 너무 무거운데. 여자의 손은 가방 언저리에서 천천히 미동하고, 나는 그 기묘한 색깔의 차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목적지 없이 계속되는 여행이란 나에게도 지워진 숙제였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을 찾아야 할지 조차 모르고 있다. 이 여자는 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자못 어리둥절한 표정을 그녀에게 지어 보이자 여자는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는 거죠? 뭐가 그리 궁금한 건가요? 그렇게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니, 사람들은 모두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게 분명해요. 나는 단 한번도 소통이란 단어를 내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과도 역시 소통할 수 없을 테죠. 그건 마치 내가 아무와도 손을 잡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걸 거예요. 아무도 나와 손잡으려 하지 않아요. 손, 이 손을 잡는다 해도,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죠. 당연해요. 그토록 차가운 느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굉장히,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이겠죠. 여자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의 풍경에 눈을 멈추고 다시 두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8.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예요. 꽤 긴 시간의 침묵이 지난 후에야 나는 다시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고, 당신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나는. 나는 당신의 손이 울고 있는 걸 봤어요. 바보 같은 소리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손은 울고 있어요. 분명히. 나는 그걸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여자는 아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창 밖을 넘어다보는 여자의 눈꺼풀이 가끔씩 깜빡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자의 움직임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여자가 나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도 내가 대 여섯쯤 된 어린 여자애였을 때, 그때 나는 어른들은 울지 못한다고 믿었어요. 나는 너무나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억지로 눈물을 참곤 했었죠. 결코 울지 않게 되는 날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을 까요. 아이들은 매일매일 쉬지 않고 자라고 있는 데 말예요.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어른 흉내를 내면서, 언젠가 정말 어른이 될 날만을 기다렸어요. 어느 날 꽤 곤한 낮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졌어요. 나는 자리에 누운 채로 두리번거렸죠. 내 발치쯤엔 엄마가 앉아있었는데, 아래쪽으로 떨군 고개 때문에 목뼈가 징그럽게 두드러져 보였고, 엄마의 어깨와 등이 조금씩, 조금씩 들썩거리고 있었죠. 목에서부터 등으로 흘러내리는 뼈의 모양이 금방이라도 일그러질 듯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나는 어른은 울지 않는 존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고요하지만 치열한 움직임을 우는 행위와 쉽게 연결시킬 수 없었어요. 엄마는 곧 무릎께에 모으고 있던 손을 들어 눈가를 재빠르게 훔쳐낸 후 내 쪽으로 돌아앉았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는 척 눈을 감아 버렸죠. 덮고 있던 이불 밖으로 나와있던 내 손을 이불 속에 넣어주고 엄마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문이 끝까지 닫히는걸 확인하고 나는 손을 다시 빼내어 눈앞으로 가져왔죠. 엄마의 손은 분명히 축축한 느낌이었고, 엄마의 손이 닿았던 내 손까지 젖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았던 거예요. 그건 정말이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사건 이였어요. 나는 아직도 몸을 들썩이며 울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뒷모습을 잊지 못해요. 어린 시절의 그걸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의, 어른이 되어버린 여자의 눈물이 뭘 의미하는 지 알 것 같아요. 나는 예의 그 어눌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힘들게 말을 끝냈고,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버스는 이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9.
울고 있는 손이라니.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여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주길 바랬지만, 여자는 여전히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차가운 손을 갖게 된 건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누구와도 대화하기 힘들어 질 때쯤 나는 이미 누구와도 손잡을 수 없었으니까. 아, 누구도 나와 손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죠. 나는 점점 모든 관심의 밖으로 밀려났고, 모든 것으로부터 낯설어졌어요. 어느 순간에건, 어느 곳에서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느낌은 굉장히 미묘한 것이더군요. 아무 것도 짐이 될 것이 없는 삶인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무게를 느껴 지나치게 피곤해 하고, 종종 겁에 질려 있기도 해요. 머무르면 곧 떠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도, 나는 그 잠시의 머무름을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언제나 그곳이 마지막 장소가 되기를 기대해 보지만 또 이렇게 어딘 가로 떠나고 있어요. 날마다 제어하기 힘든 모순된 마음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뒤섞여 나를 괴롭히고, 두 손은 내 힘으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점점 더 차갑고 푸르게 변해가요. 할머니가 남긴 지도를 들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 지도에 표시된 장소는 바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그 어딘가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이 지도는 길을 떠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 길을 찾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도대체 나는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얼마나 많은 곳들을 거친 후에야 나의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여자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물었다. 그곳엔, 혹,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당신의 생각대로 이 손이 울고 있는 것이라면, 그곳에서 내 손들은 눈물을 멈출 수 있는 걸까요. 내가 머뭇거리며 여자에게 무언가 건낼 말을 찾고 있을 때, 버스가 서서히 속력을 늦추다가 멈춰 섰고, 버스기사는 마지막 정류소임을 외쳤다. 우리, 이제 내릴 수밖에 없겠네요. 짐을 내리는 걸 도와 드릴게요. 나는 서둘러 일어나 여자의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아, 내가 할 수 있어요.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뒤따라 일어났고, 손을 뻗어 가방의 손잡이를 뺏어 쥐려 했다. 여자의 손이 내 손위로 겹쳐지자, 여자는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여자는 걱정스런 얼굴로 거듭 사과해왔다. 손이 닿았던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걸까, 나는 사실 여자의 손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괜찮아요. 나는 가방을 끌고 버스의 출구 쪽으로 나와, 곧 뒤따라 나온 그녀와 함께 가방을 버스 밖으로 끌어내렸다. 꽤 덩치가 커 보였던 가방은 의외로 그리 무겁지 않았다. 버스가 큰 소음을 남기고 떠나버린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그 길 위에 잠시 서 있어야만 했다.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 끝으로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저 나무 밑으로 가서 조금 쉬면서 어디로 갈까를 정해야겠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내리다니. 그렇지만 여전히 추워요, 그렇죠? 어서 따뜻해 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좀더 가볍게 떠날 수 있을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진심으로. 여자는 가볍게 목을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돌아섰다.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여자는 그 풍경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가방을 끌고 움직이는 여자의 뒷모습이 서서히 풍경과 하나가 되어갔다. 저, 잠깐만요. 나는 이 휘발하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다급히 여자를 불러 세우고는 여자를 향해 힘껏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선 여자에게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나는, 말했다. 당신이 머무를 곳을 찾는 그 여행, 나와. 함께. 하. 지. 않을래요. 나는 숨을 고르며 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가 거절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함께가 아니어도, 우리는 어차피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 지난한 여행의 끝,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어디쯤에서 다시 서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여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손에 쥐고 있던 여행가방의 손잡이를 놓고, 나의 제안에 대답하는 대신 그 푸른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기쁘게 여자의 손을 잡았다. 나에겐 이 푸른 손이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c) 차가운 손을 가진 이방인의 이야기, 정은영, 2002
정류소에서 만나 흐르는 데로 길을 가는 이 여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소통이라는 문제입니다. 정류소, 버스, 공간, 이동, 경계, 흐름, 여자, 소통은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가 될 것 같습니다.
정류소라는 말은 늘 '기다림'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곤 합니다. 전통적으로'기다림'늘 늘 여성들의 미덕이었기도 했죠. 길떠난 오디세우스 왕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진정성은 바로 그 '기다림'의 미덕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그간 몇몇의 프로젝트를 통해 여행하는 여성,자신의 위치를 거듭해 바꾸고 탈주하는 여성주체를 재현해 왔습니다.
그 여행은 여성이 구성된 공간을 탈주하고 스스로를 다르게 위치(re/positioning)시키기라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고, '욕망과 공포' 사이에 있는 여행입니다.
실제로, 여성들의 여행이란 전통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것, 혹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죠. 여성의 미덕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에게 투사되어왔지 내키는 대로 길을 떠나 온갖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오디세우스에게 투사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은 "창녀"이거나 "거지"인 비천한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들레르의 산책자(Flaneur)는 근대화와 도시문명의 탄생과 함께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외부세계란 위험이 도사리는 곳, 비천함으로 전락할 수 있는 곳이고 '집','지역' 혹은 '민족국가'라는 내부세계는 그녀들을 억압합니다.
더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세계자본의 재편성 위에서, 여성의 여행 혹은 국가경계 넘기라는 이 장구한 프로젝트는 값싼 노동력의 제공이나 성적인 기여에 집중될 뿐입니다. 현실의 무게가 등을 누르고 목을 조여올 때 많은 사람들은 여행과 일탈을 꿈꾸지만, 여성들에게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낭만이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오는 것이기 쉽습니다.그럼에도 늘 여행은 동경해야할 무언가가 되곤 합니다. 그랫 여자들에게 여행은 욕망과 공포로 느껴집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류소'를 생각해 봅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이 버스를 남성에, 정류소를 여성에 비유함으로써 다시한번 이 고정적인 젠더정치를 재현해 버리듯이 정류장은 꾸준히 (기다리는)'여성'으로 젠더화 되고 있습니다.(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너무 명료하죠.)
나는 삼백만원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다림'으로 등치되는 정류소의 의미를 바꾸어보려고 합니다. 정停류留소所를 정停류流소所 로 바꾸어냄으로서 '기다림'의 장소를 끊임없이 사이공간을 흐르는 떠나기 위한장소, 아무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장소로 의미화 하려고 합니다.
제가 주로 뭉개는 장소는 용산구-마포구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마포라 불리우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용산구인 산천동이라는 경계적(!)동네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마포구를 통과해 마포구 창전동 쌈지 스페이스의 작업실까지 가는
왕복여행이 제 하루의 주된 여행인 셈이죠.
아래 사진은 와우공원에서 내려다본 홍대지역입니다.
사실 땀빼면서 운동하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저로서는
인근의 공원따위는 별달리 관심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일먼저 생각난건 이 와우공원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아주 단순하게도, "공公"원과 "공公"공미술이 '공'자 돌림이라는...-_-
해서 백팔계단도 넘을 것 같은 와우공원의 꼭대기까지 몇번을 올랐지만,
아무런 영감도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었습니다.
어쨋든 지정학적인 지역으로는 제가 주로 뭉개고 있는 홍대지역으로 잡아보려합니다.
그런데 홍대로 그 지역을 정하고 나니 참 앞이 깜깜합니다.
이 지역은 그야말로 문화의 최전선, 오만가지 문화가 너무 오바해서 향유되는
문화적 폭격지이기 때문이죠.
거참. 먹을만큼 먹은 이들을 위해 무얼 또 건네주어야하는걸까요.
유학후 돌아와 처음으로 잡은 일자리는
서울의 H 대안학교와 부산의 B전문대학의 강사였다.
지난학기 이 두학교에서의 강의는 말하자면 임금노동이었던 셈.
서울의 학교에서는 시간당 3만 5천원의 제법 괜찬은 보수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당 4시간.
부산의 학교에서는 시간단 1만 6천원의 뒤로 넘어갈 보수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당 4시간.
서울의 학교에서 약 오십몇만원의 강의료가 매달 지급되었으니,
나의 연봉은 약 오백만원가량.
부산의 학교에서는 약 이십여만원의 강의료가 매달 지급되었으니,
이와 합치면 나의 연봉은 약 육백 오십여만원 가량.
그런데 매우 이율배반적으로 나의 연봉은 약 삼백여만원으로 하향조정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인즉 부산행 왕복 KTX의 운임을 제해야했기 때문.
-_-
그런 나에게 삼백만원을 줄테니 작업을 해보겠냐는 제안은
참으로 돈의 유혹이 아닐수가 없는데,
심지어 그 삼백만원이 고스란히 작업비가 아니라
작가의 생활비를 책정해 챙기라고 하는 통에
나는 제법 떨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가뭄의 한줄 단비같은 프로젝트에 제대로 협조하지 못하고,
수면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무일푼 인생의 태만을 고치지 못해, 늘상 책임자의 전화를 놓치거나,
밤새도록 어떻게 돈을 쓰면 잘썼다는 소문이 날까를 고민하느라
눈밑에는 다크써클이 생기고 아랫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과 함께,
15일이 데드라인이었던 작품기획서를 여적 쓰지 못하고는
이것은 혹 (꿈에나 그리던) 무의식적 사보타주는 아닐까 하며,
내심 황홀해 하고 있는 것이다.
-_-
2_1.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에선 폐쇠된(not in service)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등장. 이니드가 말한다. "이 정류장은 2년전부터 노선이 다 없어졌걸랑요?." 할아버지가 말한다. "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2_2. 아무도 정류소에선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정류소는 기다림보다는 떠남에 목적이 있을텐데 왜 기다림에 방점이 찍히는 걸까.